독일 음악의 심장, 라이프치히

도시 곳곳에 서린 거장들의 숨결

by 조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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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

슈만과 클라라의 이야기를 잠시 내려놓고, 오늘은 그들이 삶을 꾸렸던 무대, 라이프치히(Leipzig) 도시를 걸어보려 한다.

라이프치히는 동독의 도시이기 이전에, 괴테의 문학이 숨 쉬고, 바흐의 선율이 흐르는 예술의 성지이다. 멘델스존, 슈만, 바그너, 그리그, 말러... 이 거리를 거쳐 간 거장들의 이름만 나열해도 숨이 찰 지경이다. 빈(Wien)이 오스트리아의 음악 수도라면, 라이프치히는 진정한 '독일 음악의 심장'이라 부를 수 있다.


전통과 지성이 교차하는 곳, 아우구스투스 광장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

중앙역을 지나 도시의 중심, 아우구스투스 광장(Augustusplatz)에 들어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클래식애호가들이 사랑하는 게반트하우스(Gewandhaus)와 오페라하우스(Leipzig Oper)가 서로 마주 보고 있는 웅장한 풍경이다. 그 측면에는수많은 석학을 배출한 명문 라이프치히 대학이 현대적인 위용을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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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반트하우스, 오페라하우스, 라이프치히 대학

마치 빈 대학과 시청, 부르크 극장이 어우러진 비엔나의 시청 광장을 옮겨 놓은 듯한 기시감이 든다. 이곳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도시 전체에 흐르는 지적이고 예술적인 공기가 피부로 느껴진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성 토마스 교회(Thomaskir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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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사랑하는 여행자라면 단연, 성 토마스 교회(Thomaskirche)의 바흐 선생님부터 찾아뵙는 것이 예의일 것이다.

교회 앞에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평생을 성실한 '워커홀릭'으로 살며 매주 새로운 칸타타를 써내려갔던 그가 있었기에, 18~19세기 클래식은 물론이고 어쩌면 비틀즈로 이어지는 현대 대중음악의 기틀까지 마련된 것이 아닐까. 나는 동상을 보며 존경과 감사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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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으로 들어서면, 부활절이면 <마태수난곡>이 울려 퍼지는 제단앞에 바흐가 영면해 있다. 나는 위대한 유산을 남긴 '음악의 아버지'에게 헌화하며 기도를 올렸다. 고개를 들어 스테인드글라스를 바라보니, 성스러운 빛 속에 바흐와 펠릭스 멘델스존이 나란히 빛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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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견과 싸운 천재, 멘델스존


바흐가 음악의 아버지라면, 그 아버지를 세상 밖으로 다시 불러낸 것은 멘델스존이다. 모차르트에 비견되는 신동이자, 괴테가 사랑했던 천재. 혹자는 그를 부유한 명문가 출신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선대 음악을 향한 그의 집요한 탐구와 천부적인 감각은 '금수저'라는 말로 가릴 수 없는 진짜 재능이었다.

1840년, 멘델스존은 당시 잊혀가던 바흐를 세상에 다시 알리기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바흐의 동상을 세우기 위해 전 세계 음악가들에게 기부를 호소했고, 부족한 자금을 채우기 위해 이곳 토마스 교회에서 직접 오르간 연주회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헌납했다. 1843년 4월, 마침내 바흐 기념비가 제막되던 날. 멘델스존은 "이제야 선생님께 걸맞은 자리를 되찾아주었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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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토마스 교회 옆에는 멘델스존의 동상도 있다. 이 동상에는 슬픈 역사가 서려 있다. 1936년, 나치는 멘델스존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게반트하우스 앞에 서 있던 그의 동상을 몰래 철거해 버렸다. 위대한 음악가의 흔적은 그렇게 녹여져 군수물자가 되거나 사라져 버렸다.

KakaoTalk_20260123_095039441_01.jpg 멘델스존 동상

하지만 예술은 권력보다 강하다. 2008년, 멘델스존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동상은 다시 복원되었다. 비록 원래 있던 자리는 아니지만, 그가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했던 토마스 교회 곁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제 멘델스존의 동상은 그가 모금하여 만든 바흐 동상과 마주 보고 서 있다.

베토벤이 소리가 들리지 않는 육체의 비극과 싸워야 했다면, 멘델스존은 '유대인'이라는 사회적 편견과 보이지 않는 벽을 넘기 위해 평생을 투쟁했다. 그의 우아한 선율은 편안한 삶의 결과물이 아니라, 차가운 시선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을 증명해내려 했던 치열한 고뇌의 산물임을, 이곳 라이프치히에서 다시금 깨닫는다.


거장들의 숨결이 깃든 거리


KakaoTalk_20250613_100159792_15.jpg 바그너 동상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이 도시가 낳은 또 다른 천재, 리하르트 바그너를 떠올리게 된다. 히틀러가 사랑했고, 멘델스존을 질시했던 오만한 천재. 하지만 음악극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그의 압도적인 예술성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극작가를 꿈꾸던 소년 바그너가 음악에 투신하게 된 계기도 바로 이곳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에서 들었던 베토벤 교향곡이었다.

KakaoTalk_20250708_111402839.jpg 괴테 동상

바그너의 강렬함을 뒤로하고, 괴테가 <파우스트>를 집필하며 영감을 얻었다는 유서 깊은 술집 '아우어바흐 켈러(Auerbachs Keller)'로 향했다. 입구에 있는 메피스토펠레스와 파우스트의 동상을 지나, 나 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유혹을 이겨내길 다짐하며 시원한 맥주잔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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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함께 달리는 도시


KakaoTalk_20250722_093731345_25.jpg 라이프치히 마라톤 메달

이번 여행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라이프치히에서 참가한 10K 레이스였다. 슈만 부부의 신혼집에서 불멸의 피아노 사중주(Op.47)를 듣고, 게반트하우스에서 거장 블롬슈테트가 지휘하는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의 묵직한 독일 사운드에 감탄했다. 그리고 그 감동을 안고 현지인들과 호흡하며 거리를 달렸다.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

투박해 보이지만 속정 깊은 독일인들의 따스함과, '불금'을 즐기는 라입찌커(Leipziger)들의 에너지를 느끼며 18세기의 라이프치히나 지금이나, 이 도시는 여전히 뜨거운 예술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