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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를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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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풍가도
Apr 13. 2025
몇 해 전 부모님이 고향에서 올라오셔서 함께 살다 결혼에 대한 잔소리가 너무 극심해질 무렵, 나는 부모님께 축객령을 내렸다.
‘다시 고향으로 가세요!’
그리하여 못난 불효자는 다시 혼자 살기를 시작했다.
살기 한 달쯤 되는 날이었다.
오랜만에 아침 운동을 끝내고 잘하지 않던 집정리도 좀 하고 상쾌한 기분을 이어보려 목욕탕에 갔다.
얼마 만에 오는 목욕탕인가. 다른 이들이 출근한 한가한 오전시간에 뜨끈뜨끈한 탕에 몸을 담그고 있는 것만으로도 난 뭔가 성공한 느낌이 들어 평일 오전의 목욕탕은 내 나름의 힐링포인트다.
거기에 날이 맞아 세신이라도 하는 날과, 더 날이 맞아 낮잠을 잘 시간까지 주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는 하루가 되는 것이었다.
40도에 맞춰진 온도계를 보며 뜨거움을 한껏 두르고 있을 때 누군가 아는 척을 했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선생님 아니셔”
“어? 안녕하세요 형님”
얼마 전 같이 수영할 때 알게 된 형님이었다. 나이차가 솔찬히 나지만 뭐 나이가 이쯤 되면 다 형님으로 부르는 게 서로서로 기분 좋은 선택인 듯하다.
서로 뜨거운 것을 같이 두르면서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형님이 묵직한 한방을 날리셨다.
“아니 근데 말이야. 자네 예전에는 몸이 참 좋았었는데, 그 몸 다 어디 간 거야?”
아... 눈치가 백 단이시다.
같이 수영할 때 항상 샤워장에서 몸 좋다고 칭찬하시던 형님이셨으니 당연할 수도 있겠다.
“아 요즘 좀 바빠 운동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거기다 맨날 야식을 먹다 보니 이렇게 되었네요. 하하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형님은 더 뜨거움을 찾으러 떠나가셨고 남겨진 나는 빈약하고 출렁한 몸뚱이를 옆 탕보다 좀 더 빈약한 뜨거움에 조금은 우울하게 담그고 있었다.
“난 이제 먼저 가네, 참, 그래도 자네 바디라인은 아직 살아있구먼, 하하하”
“하하하, 감사합니다 형님, 들어가십시오.”
30분 만에 그 형님은 나를 들었다 놨다 하고 가버리셨다.
연륜이 무섭다 했던가.
아마 그 형님은 의식해서라기 보단 자연스럽게 나온 행동이지 않았을까.
어떤 만남이던 인연이던 마무리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이런 사소함도 마무리를 짓고 떠나시는 것을 보면 말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매일 여러 가지 마무리들을 만나게 된다.
일이던 사람이던 하다못해 버려야 할 종이컵이라도.
내가 다 먹은 종이컵을 바닥이 아닌 쓰레기통에 넣는 것 또한 세상사에 대한 마무리를 연습하는 것이라면 너무 억지스러운 것일까.
아... 그나저나 쓰레기통에 넣는 종이컵 농구는 오늘따라 참 안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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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에서 학생들과 치열하게 드잡이질 하고 있는 강사 겸 작가지망생입니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행복과 기쁨, 그리고 옛날 추억들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 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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