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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란 Jul 15. 2023

이런 동창회 보았나요?

                                                                   

  47년 2개월 만에 만나는 당신, 잘 있었나요? 꽃다운 19살 소녀가 할머니가 되어서 당신을 보러 왔네요. 


  옥련 지를 품고 있는 당신은 산 중턱에 서 있었어요. 우리는 아침이면 언덕을 올라 당신께 갑니다. 당신께 가는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며 우리는 다리가 무 다리 된다며 투덜거리곤 했지요. 밤에 불이 나서 우리가 모두 너무 놀라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불난 당신을 보호하기 위해 생물 선생님이 뛰어다닌 이야기는 전설처럼 들려오기도 했었지요. 운동장에서 교련복을 입고 제식훈련하던 때, 음악 시간이면 방음장치가 잘 된 멋진 음악실에서 ‘코오르위붕겐’으로 음정 훈련을 했던 때도 떠오릅니다. 미술 선생님은 화가 특유의 모자를 쓰고 다니셨던 멋쟁이 선생님이셨고요. 무용 시간 무용실에서 춤출 땐 선이 고운 친구를 부러운 눈으로 보기도 했던 곳이고, 야간자율학습까지 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곳이지요. 당신은 나의 여고 시절을 함께 한 모교 안동여자고등학교입니다. 


  그 시절 4층 건물의 층마다 교실 앞에 테라스가 있는 우리 학교는 시대를 앞서가는 건물이라며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시내에 위치하던 당신이 새로운 좋은 건물 지어 이사한 곳이 현재의 그 자리입니다. 

  버스 3대를 타고 들어간 학교는 여고 시절 꿈을 키웠던 그 자리 그대로 있었습니다. 우리가 흙을 날라 꾸며나갔던 옥은지 연못도 더 예쁘게 조성되어 있고 주변은 숲이 우거져 학교를 돌아보는 우리의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습니다. 딸 같기도 하고 손녀 같기도 한 앳된 선생님들이 안내해 주는 교정 이곳저곳을 다 돌아보았습니다. 우리가 꿈 많던 소녀 시절, 친구들과 몰려다니던 곳을 이제야 다시 와 본 겁니다. 옥련 지를 둘러보고 내려오고 있는데 교정에 있던 몇몇 아이들이 우리의 방문 소식을 듣고, 3, 4층쯤에서 창문 너머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안녕하세요. 선배님’이라며 소리를 질러줍니다. 아줌마, 할머니가 아니라 선배님이라고 불러주니 감사했습니다. 


  본관 교정을 둘러보며 교실, 특별실 곳곳을 가 보고 우리들이 자랑하던 교실 앞 테라스에 나가 사진도 찍었습니다. 여고 시절 친구들과 테라스에 나가 조잘거리던 내 모습이 보입니다. 후배 아이들을 만나니 뽀송뽀송 젖살까지 보이는 듯합니다. 풋풋했을 나의 여고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선후배 100명이 함께하는, ‘내 고향 바로 알기’라 이름 붙인 의미 있는 동창회를 했다. 내가 안동 출신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동에 관해 가끔 묻곤 한다. 그러나 나는 안동에 대해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웬만한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만한 내용인 도산서원, 하회마을, 안동댐, 월영교가 있다는 정도밖에 말할 수 없었다. 나도 수박 겉핥기 정도로 알 뿐이었다. 

   퇴계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1박 2일 일정이다. 입교식은 수련원에서 진행되었고 우리는 세 그룹으로 나누어 움직였다. 우리 팀은 먼저 도산서원으로 가서 그 시절의 강당 격인 전교당에서 화관을 쓰고 제사를 위한 전통 복장을 갖추어 입었다. 별유사(別有司;서원의 살림을 총괄하는 사람)의 안내에 따라 퇴계 선생의 제사를 체험해 보는 알묘례 행사에 참여하니, 마치 우리가 퇴계 선생을 만난 듯 경건한 분위기가 되었다. 


   알묘례를 한 후, 종가로 이동하여 16대 종손(이근필 옹)을 만난 시간은 특별했다. 우리가 종가의 대청마루에 오르자, 연세가 아흔이 넘는 그분이 나와서, 서로 예를 갖추는 인사를 하게 되었다. 종손이 큰절을 먼저 하니 우리도 당황해하며 모두 엎드려 엉겁결에 따라 큰절했다. 하긴, 우리가 어렸을 때 큰집에 가거나 외가에 가면 큰절을 올렸었고, 처음 결혼해서도 시댁에 가면 큰절을 올리곤 했었다. 종손은 그것을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그러고 나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눌 때도 계속 무릎을 꿇고 예를 표하며 우리 앞에 앉아 있다. 나도 엉거주춤 무릎을 꿇으려다 힘들어서 양반다리로 앉았다. 귀가 안 들린다고 하면서도 그분의 신념인  ‘조복’에 관해 이야기해 주는 모습이 생경하다. 


  지금도 매일 친필로 ‘조복’이라는 족자를 100장씩 써서 오신 손님들에게 배부한다고 하니 나도 은근히 기대했다. 강의실로 돌아와 부원장이 다시 안내하고 나누어 주었다. 덧붙여서, 그 친필을 모셔두지 말고 식탁이나 잘 보이는 곳에 두어야 실천할 수 있다는 당부를 해 주었다. 한두 장이라도 더 받아 가고 싶은 마음이 은근히 올라왔다. 마음 한편에는 ‘욕심내서는 안 된다. 참아라.’하고 또 다른 마음은 ‘하나라도 더 받아서 아들에게 갖다 줘.’ 내 마음이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 “필요한 사람은 더 가져가도 됩니다.” 한다. 살짝 부끄러웠지만 두 아들에게 줄 마음으로 2개를 더 받아왔다. 퇴계 선생의 배려와 선비정신을 본받겠다고 하는 내 모습과 배치되는 행동이다. 그래도 좋다. 두 아들에게 자랑 스러이 이야기하며 주리라. 


   우리가 나갈 때 문 앞까지 나와서 배웅해 주면서 우리 차가 멀리 갈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는 모습에 그곳을 방문하는 사람 모두를 가족처럼 생각하는 듯해서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우리가 떠난 후 더 쓸쓸해하지 않을까, 상대의 마음을 느껴보는 내 모습도 보인다. 퇴계 선생을 조금이나마 닮아보고 싶은 내 모습을 보니 여길 다녀가면 퇴계를 닮고 싶어지나 보다.      


   다음 날 새벽 5시 30분에 기상과 함께, 퇴계 선생 산책로 걷기에 참여했다. 나는 아침잠도 많고 부지런하지도 않은 사람인데, 일찍 일어나겠다고 다짐하고 미리 알람을 켜 놓아 시간 맞추어 나갔다.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참여한 듯하다. 수련원에서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산책에 참여한 건 처음이라고 한다. 안동여고인, 우리는 참 부지런하다. 


   산책 중에 연수원 지도위원이 우리나라 돈 1,000원짜리 지폐의 확대 사본을 보여주며 앞면의 퇴계 선생을 보여 주었고, 뒷면의 그림에 대한 설명과 함께 그 위치를 알려주었다. 도산서원 앞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걸어 나가면 딱 그 모습의 그림 같은 전경이 보였다. 그림은 겸재 정선 선생의 「계상정거도」이며, 자세히 살펴보면 배산임수의 작은 암자에 퇴계 이황 선생이 책을 읽고 있은 모습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곤 했던 지폐를 다시 보게 되었다. 1,000원에 그려져 우리나라 곳곳을 누비는 퇴계 선생은 돈을 몰랐을 분일 것이다. 청렴하고 겸손하셨던 분,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신 분이 지금 이렇게 우리 지폐에 담겨서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고 있다는 건 아이러니다. 


  이육사 문학관도 찾았다. 이육사도 퇴계의 후손이다. 그분의 삶에 대해서 한 분뿐인 따님 옥비 여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담담하게 아버지 이육사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리며 이야기해 주었고, 우리가 여고 동창생들이라 옥비여사 어머니의 남편을 살리기 위해 애썼던 지혜로웠던 일화를 듣고 우리는 숙연해졌다. 수인번호 264에서 따 온 이름, 이육사, 투옥을 17번이나 하였다는 이야기와 해방을 한 해 앞둔 1944년에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는 안타까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 옥고를 치르러 갈 때 세 살 딸 옥비 여사가 아버지 이육사를 만난 이야기를 들을 땐 가슴이 더 아파졌다. 일제에 항거했던 저항시인 이육사를 함께 느끼며 「광야」를 함께 낭송했다. 울먹임이 함께한 시 낭송이 되었다. 


   수련원에서의 수료식을 마친 후 우리는 안동에 있으면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꼭 한 번 가보는 게 좋다는 예쁜 벽화마을인 선비 순례길 1코스의 예끼 마을과 선성수상길, 그리고 최근에 개관한 유교 박물관을 다녀왔다. 안동에 이렇게 예쁜 곳이 있는 줄 처음 알았다. 선비 순례길의 고즈넉한 풍광을 가슴에 품고 우리의 모교로 향했다.      


    당신께 가는 우리들의 몸과 마음엔 1박 2일 동안의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의 선비정신이 몸에 푸우욱 배는 듯했습니다. 퇴계의 종손이 우리 모두에게 준 족자, ‘조복’을 품에 안고 참 배려 인의 예절 바른 소녀가 되는 듯 해 지기도 했고요. 이육사의 애국심을 가슴에 담고 애향심·애교심을 품고 온 듯하답니다. 모교에서 맞아주는 정성 담긴 차 한잔과 선생님들의 환대로 고향의 향이 더 배가되는 듯했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당신을, 내 고향 안동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이런 동창회 보았나요?      

                                              2023 7-8 격월간 에세이스트 110호 수록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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