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도 없냐? 차가 오는데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막 가냐!”
“그러게요. 다치면 어쩌려고……. 깜짝 놀랐잖아요.”
나도 남편의 말에 덩달아 내편에게 말하며 거들 듯 말했다. 남편이 운전하다가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 화들짝 놀란 것이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차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나마 우리가 잘 멈추어서 다행이라고 하면서, 앞만 보고 지나간 그분께 운전 잘 한 우리 덕에 무사했다고 생각했다. ‘자동차님 가시는데 길을 비켜라.’
호주 여행이다. 자동차가 맥없이 스멀스멀 기어간다. 사람이 횡단보도 근처만 와도 그놈은 맥을 못 춘다. 호주는 그렇다고 한다. 첫날 시드니에서는 여행가이드가 운전하며 하루 여행을 하고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이틀 후 골드코스트에서 차를 렌트하여 다닐 것이라고 했더니 그는 한국과 호주는 운전자가 주의해야 할 것에 차이가 많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해 준다. 자동차 운전자의 위치도 반대이고, 엄격한 사람중심 시스템이니 긴장해야 한다고 한다.
“횡단보고 근처에서 길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일단정지하며 그들을 살펴보아야 해요.”
항상 사람이 먼저인지라 자동차를 운전하는 사람은 주의를 잘 살펴야 한다고 한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연한 이야기를 자꾸 반복해서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늘 안전운전을 잘하는 사람들인데…….’ 신호등이 없는 경우 특히 더 잘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를 자꾸 하니 성가시게 조차 들리기도 했다.
호주 여행 중 하루는 우리 부부가 차 없이 걸어서 시대 곳곳을 다녀보기로 했다. 골드코스트 시내는 그리 먼 곳이 아니라 몇 번 돌아다니니 지역을 좀 알 것 같다. 수륙양용 버스도 타고 마트도 다녀올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우리가 횡단보도 앞 도로에 서 있기만 해도 자동차는 슬금슬금 기어 오는 듯하더니 멈추어버린다. 사람은 자동차 눈치 보지 않고 맘껏 다니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면에 자동차는 사람의 눈치를 많이 보는 듯하다. 첫날 가이드의 말이 맞다.
‘그래 이게 사람 중심이지.’
남편에게 일부러 횡단보도 근처에 서 있어 보자고 했다. 그때마다 대부분의 자동차가 슬금슬금 눈치 보듯 사람님을 살펴보면서 선다. 우리가 지나가고 나면 자동차도 지나간다. 마음의 여유가 느껴진다.
'사람이 먼저다. 여기서 자동차 운전하려면 정말 조심해야겠다.'
한국에 돌아오니 나의 일상이 바쁘다. 손녀의 등원시간에 맞추어 아들 집으로 가야 하니, 나는 종종거리며 서두르게 된다. 신호등이 있는 큰길을 두 번 건너야 하고 거리도 제법 된다. 그러나 아침 출근 시간이니 신호등이 있는 곳에도,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도 대부분 교통도우미가 있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는 제법 잘 사는 사람들이 살고 있을 법해 보이는 주상복합 아파트 출입구도 지나가야 한다. 경비원이 호루라기와 붉은 지시봉을 가지고 나와서 사람과 차량의 이동을 돕기 위해 나와 있다. 나도 시간에 맞추어 서둘러 가야 하니 마음도 걸음걸이도 바쁘다. 주상복합아파트 출입구 쪽으로 자동차가 한 대 나오고 있다. 차가 가까이 오기 전에 출입구 횡단보도를 빨리 지나가고 싶다.
“호러르륵!”
경비원은 호루라기를 불고, 지시봉을 올리며 나를 멈추게 한 후, 자동차가 먼저 지나가게 한다. 그는 그의 일에 최선을 다한다. 호송을 받은 자동차님이 지나갈 때까지 나는 서서 기다려야 했다.
‘나! 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