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승 이직 실패하고 사직서 내기.
코로나가 조금씩 풀리면서 나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코시국에도 나를 계속 일하게 해 준 회사에 정이 떨어져 버렸다.
여행사답게 하늘문이 열리자 어수선해지는 회사, 나를 가르쳐주던 능력있는 팀원들이 하나 둘 회사를 떠나가고 그런 변화를 계속 보고 있자니 조직에 소속되어 있다는 안정감에 젖어 숙이고 있던 고개를 조금씩 들게 되었다.
코로나 직격탄에 맞아 휴직에 들어갔던 내 주변인들은 다른 업종이라는 세계에서 행복한 듯 보였고, 코시국에도 여행사에 붙어 일을 하던 나의 과거가 다행이 아닌 불행이었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이별보다 어려운 게 퇴사고, 솔로보다 힘든 게 백수인 법.
업데이트도 안 하던 구직 어플을 시시때때로 들어가고, 내 SNS는 알고리즘에 걸려 온통 실무 교육이나 채용 광고들로 가득했다. 온종일 나는 빨리 이직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부추겼고, 나의 잔여 연차는 면접으로 소비되었다.
그렇게 구직활동과 근무를 병행하다 보니 예전에는 즐거웠던 근무시간이 이직 준비가 길어질수록 허송세월 같아졌다.
2년 8개월의 시간을 보낸 곳인 만큼 회사 사람들과도 가족처럼 편해지고, 일하는 것도 수월해졌지만 점점 더 회사가 밉고 싫어졌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못나보여서 힘들었다.
마치 나를 항상 믿어주는 오랜 연인한테 질려서 환승 이별을 준비하는 못된 여자가 된 느낌이랄까.
난 내 스펙에 나름 자신이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회사들은 결국 나를 원하지 않았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어정쩡한 여행사 경력과 어중간한 인서울 4년제 학력, 꽤 열심히 이력서를 채워논 대학시절 경험들과 자격증들은 내 눈을 잔뜩 높여놨고 펜데믹도 엔데믹도 아닌 이 시국에 이런 나를 원하는 회사는 없었다.
‘아 코로나 터졌을 때 나도 휴직 들어갔으면 차라리 더 좋은 곳 가지 않았을까’라는 철 없는 생각에 잠식되며 술만 마시면 눈물이 나기도 했다. 한 4~5개월 정도를 치열하게 구직활동을 했는데, 그동안 나는 많이 병들어갔다.
퇴사할 생각은 딱히 없었다. 근데 주변에 고민상담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남들도 다 하는데 왜 난 퇴사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지레 겁을 먹고 있었을까 하고 그냥 ‘나도 퇴사할래!’하고 맘을 먹었더니 속이 엄청 후련해졌다. 이렇게 편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엄청 편해졌다.
경험해본 적은 없지만 나를 엄청 괴롭히던 지독한 병이 싹 완쾌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퇴사하겠다는 다짐으로 마무리 된 술자리 바로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을 불러 퇴사하겠다고 얘기했다. 퇴사 사유는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다행히도 꽤 젊은 생각을 갖고 있는 회사여서 나의 퇴사 사유에 대해 분노해하거나 나무라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주고 그런 생각이 들게 해 미안하다고 답변해주는 임원의 모습에 감동했고, 내가 정말 좋은 회사에 다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기분이 좋았다.
내가 만약 환승 이직을 사유로 퇴사를 하게 됐다면 이 회사랑은 좋지 않은 이별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백수가 되지만, 나중에 다른 회사에 가게 되면 이 회사를 그리워할 수도 있겠지.
2년 8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게 사귄 연인과의 이별 같았던 나의 퇴사.
계속되는 환승 이직 실패에 지쳐 결국 나는 퇴사를 했고, 28살의 나이에 신입 백수가 되었지만 너무 후련하고 기쁘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터닝 포인트 이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