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영희 Sep 19. 2024

70년생 영희의 고향 이야기

우리 소(牛)가 없어졌다

   소마구간이 깨끗이 치워졌다. 우리 소가 없어졌다. 그러나 아무도 소가 어디 갔냐고 묻지 않았다.


  영희네 집에 같이 살던 그 누렁이 소(牛)는?


  일 년에 한 번, 금 송아지 선물을 낳아주는 산타였다.

매일 밤, 무서운 화장실 가는데 옆에서 우리를 지켜주는 경호원이었다.

캄캄한 새벽에 일어나  부리망태기 쓰고 순순히 일하러 따라 나가는 엄마의 든든한  동료이었다.

이웃집 아저씨 일손 빌려 궂은일 해결하면 사람 대신 품 팔아주는 우리 집 구원투수였다.

덜컹덜컹 빈 구루마 타고 논에 갔다가 타작한 볏가마니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소 코뚜래 꽉 잡혀 거친 숨 몰아쉬고 침을 한없이 흘려도 말 잘 듣는 우리 소는 순둥이 천하장사였다.

고드름 녹아 물 떨어지는 소마구간 처마 밑에서 큰 눈은 껌뻑껌뻑,  입은 우물우물 되새김질하며 한가로이 햇빛 쬐는 모습은 고생 끝에  낙(樂)과 안식이 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그 소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많이 의지했고, 항상 고마웠고,  너무너무 미안했다.  


   초등학생 영희도 학교 갔다 오면 제일 먼저 이빨 빠진 낫을 부싯돌에 슥슥 문질러 챙겨 들고나가서 소꼴(풀)을 한 포대씩 뜯어다 놓았다. 소를 몰고 나가 풀을 먹이지만 그것으로 양이 모자라고 부지런히 풀을 말려 비축해 둬야 겨울에 영양보충을 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당에 쌓아놓은 볏짚동가리에서 짚을 몇 단 꺼내서 발작두로 먹기 좋게  쓴 여물과 방앗간에서 나온 속겨가루('딩기'라고 불렀음)를  말린 풀과 섞어 큰 솥에 푹 끓여서 저녁에도 먹이고 아침에도 먹였다. 소는 뜨거운 소죽도 여물통에 부어주면 입으로 식혀가며 잘도 먹었다. 발 작두는 언니들의 몫이었지만 영희도 손작두질은 같이 할 수 있었다. 바래기 같은 긴 풀을 언니가 손으로 가지런히 눌러 작두 날 안으로 밀어 넣으면 두 손과 몸으로 작두 손잡이를 꾹 눌러 풀을 썰어 마당에 널어 말린다. 풀이 많을 때는 신선한 풀을 그냥 먹도록 여물통에 넣어주기도 하고 손에 들고 입 가까이 대면 긴 혀로 날름날름 끌어당겨 잘도 먹었다.

소마구간의 송아지와  소 (그림. 전새힘)

 다른 사람들처럼 어린 시절에 소와 얽힌 아름다운 추억도 많지만 우리 자매들에겐 남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남다른 흑역사가 있다.  매일 저녁이 되면 소가 쉴 수 있도록 소마구간 정리를 해 줘야 한다. 똥, 오줌으로 범벅이 된 축축한 짚을 쇠스랑으로 끌어서 뒤쪽에 쌓아두고 새 짚을 두툼하게 깔아주면 그 위에서 소는 편히 쉴 수 있다. 소똥과 소가 밟은 짚은  다음 해 농사에 쓸 양질의 밑거름을 만들어 준다. 그렇게 차곡차곡 오물더미가 모이면 정기적으로 배꼬마당의 거름더미에 리어카로 끌어내리는 일을 해야 했다. 우리 집이 높아서 골목길이 가파르고 미끄럽기까지 해서 온 식구가 달라붙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되는 큰 일이었다. 소마구간 치우는 날에 영희의 주 임무는 리어카가 내려오는 길 앞에 먼저 가서 사람들이 있는지 없는지 알려주는 신호수였다. 가장 힘든 코스에서 리어카 바퀴가 수채에 빠질 지경이면 한 손이라도 힘을 보태 리어카를 잡고 죽을힘을 다해 함께 당기면서 천천히 내려야 했다. 빨리 끝내려면 한 번에 많이 실어내면 좋지만 여자들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실어야 하므로 오전 내내 골목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다. 땀에 흠뻑 젖은 옷, 냄새나는 거름더미를 실은 리어카를 누가 볼까 봐 얼른 밀고 끌고 집으로 올라갔지만 간혹 동네 오빠들이 지나갈 때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왜 하필 동네 한 복판에 배꼬마당이 있는지 애꿎은 배꼬마당을 원망하고 우리 집엔 왜 힘센 오빠가 없는지 투덜댔다. 

 사춘기 소녀들의 소마구간 치우기에 얽힌  잿빛 추억은 남 얘기인 듯 지금도 안쓰럽지만 그마저도 소와 함께 사는 생활의 일부였고, 그 부산물은 소가 우리에게 주는 또 다른 선물이었던 것을 그땐 깨닫지 못했다.    


소 구루마 (사진. 창녕군청 누리집)

그렇게 세월이 흘러 우리는 많이 자랐고 그만큼 소는 많이 늙었다. 새끼도 낳기 힘들고 힘도 없어져서 팔아야 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차피 팔아도 가격을 얼마 못 받으니 설에 잡아서 동네 사람들끼리 나눠서 쓴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비밀스럽게 듣게 되었다.

 그 해 설날엔 집집마다 좀 채로 보기 힘든 소고기가 한가득 배분되었다. 그러나 우리 집은 그 고기를 차례상에 올렸지만 아무도 먹지 않았다. 그리고 소에 대해 입 밖에 내지도 않았고, 너무 슬프지만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그 소는 우리 어린 날의 친구이자 영웅이었고 하늘에서 내려와 모든 걸 다 주고 돌아간 천사였다.

작가의 이전글 70년생 영희의 고향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