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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몽 Aug 30. 2024

에어컨 사망 사건의 전말

대체 얼마를 손해 본 것인가 


'그 사건이 정확히 언제였더라?'

작년 여름이라는 것만 기억난다. 구글캘린더에서 '에어컨'이라는 단어로 검색해 봤다. 


사건의 시작은 2023년 7월 10일
종료는 2023년 9월 6일
정확히는 8주 하고 3일간 일어났던 '에어컨 사망 사건'에 대해, 그동안 대체 얼마나 손해를 보았는지 '간략히' 이야기해보려 한다. 슬픈 이야기다. 길게 풀자면 한없이 길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사건 발생 시기에 주목해야 한다. 7월과 8월. 

휴스턴은 5월부터 여름이 시작된다. 휴스턴의 대지는 4월 말부터 서서히 시동을 걸고, 7월이 되면 정점을 찍다가, 8월 말이 되면 한풀 꺾이기 시작한다. 여름 내내 40도가 넘는 기온에 습기까지 머금고 있으니 주차하고 마트에 걸어가는 사이에 땀이 주욱 흐른다. 그게 휴스턴의 7월과 8월이다. 여름 내내 에어컨을 끄지 않는 이유다. 이 시기에 에어컨은 생존과 연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7월 10일, 에어비앤비 앱에서 메시지가 뜬다. "에어컨이 고장 난 것 같아. 온도가 내려가지 않고, 집 안이 너무 더워" 망했다. 워런티 회사에 연락은 했지만 당일 예약은 어려웠다. 게스트를 그대로 내보냈다. 환불도 했고, 사과도 했다. 

거기까지 하고 남편은 출장을 떠났다. 


7/11 첫 번째 수리기사
7월 11일, 약속 시간에 맞춰 키 큰 흑인 남자가 나타났다. 말없고, 표정도 없는 젊은 친구였다. 그는 실외기는 보지도 않고(지붕 위에 있어서 볼 수도 없었지만) 부품 하나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리닝을 먼저 해야 교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그의 말은 다분히 의심스러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400불(53만원)이 결제되자마자 그는 집을 떠났다. 부품을 구하러. 아마도 멀리. 

처음부터 "이 에어컨은 나이가 많아 소생이 어려워"라고 했으면 그래, 바로 믿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그런 가능성에 대해 염두는 했을 거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부품을 갈면 돌아갈 거라고 했다. 


이 날 집을 떠난 젊은 친구는 4시간 정도가 지난 후에야 돌아왔다. 곧 간다는 말만 믿은 채 나는 덥디 더운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집에는 더워서 있을 수가 없었고, 당시 내 차는 주행 중에만 에어컨이 돌아갔다) 


고쳤다는 그의 말을 믿었다. 

구멍에서 찬 바람이 정말 나오는 것도 같았다.
손의 감촉이 에어컨 바람인지 그냥 바람인지 구분하기에 나의 정신은 혼미했다. 

그래서 신나게 집으로 향했다. 



7/17 두 번째 수리기사 

다음 게스트에게 또 연락이 왔다. "집이 더워" 마음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분명 고쳤는데 무슨 말인가! 이제는 남편도 없다. 이런 일 해본 적이 없다. 덜덜 떨며 워런티 회사에 전화했다. 수리 업체에도 전화해 따졌다. 젊은이 말고 좀 윗사람을 보내라 당당히 말했다. 해보니 별 것 아니었다. 


그렇게 두 번째 기사를 만났다. 이번엔 카우보이 모자를 쓴 백인 남자였다. 서글서글 웃고 장난도 치던 누가 봐도 E였던 분. 

이번엔 긴 사다리를 가지고 나타난 덕에 지붕 위에 있던 실외기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카우보이 아저씨의 말로는 다른 부품이 필요하다는 건데, 문제는 주문하면 3주가 걸린단다. 여름방학 피크에 게스트를 받지 못한다니. 그래도 어쩌겠는가, 믿는 수밖에.
부품은 주문에 들어갔고, 나는 게스트를 줄줄이 취소시켰다. 



7/31 타 업체 수리기사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어 워런티 회사를 거치지 않고, 다른 업체에 연락을 돌렸다. 주변에 에어컨 수리업체가 많이도 있었다. 하지만 실외기가 지붕에 있다는 말에 어디서도 와주지 않았다. 한 군데만 빼고.

실외기 위치를 묻지 않은 한 곳에서 수리기사를 보냈다. 무릎을 절뚝이며 나타난 아저씨는 오자마자 난색을 표했다. 여기저기 전화도 걸었다. 하지만 사다리를 들고 와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지 못했다. 그는 안에 상태만 우선 봐주기로 했다. 상태를 본 그는 "이거 부품 갈아도 금방 고장 날 거야. 그냥 교체하는 게 나을 거야"라는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이 때라도 바로 에어컨을 교체하면 좋았겠지만 지난 일은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8/6 세 번째 수리기사 

중간에 5주로 늘어났던 부품의 도착시간이 다시 3주로 줄어들었다. 다행이었다. 
이번엔 머리가 반짝거리는 백인 아저씨가 나타났다. 더 전문가의 포스가 뿜어져 나오던 그는 부품을 갈더니 에어컨을 작동시키기 시작했다. 에어컨에서 드디어 찬 바람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큰 숨이 쉬어졌다. 

이걸로 해결된 줄 알았다. 신이 나서는 게스트를 다시 받았으니까. 




9/6 결국 에어컨 교체

소음이 조금 있었지만 잘 돌아갈 줄 알았다. 2주보다는 더 버틸 거라 믿었다.
하지만 타 업체에서 왔던 아저씨 말대로 에어컨은 다시 멈췄다. 이번엔 내가 사망선고를 내렸다. 애도까지 할 여유는 없었지만. 


이제 본격적인 교체 견적이 오갔다. 하필이면 지붕에 실외기가 있는 탓에 지붕까지 올려줄 크레인도 빌려야 했고, 인부도 더 필요했다. 히터까지 교체했던 총 비용이 9,556불(1,270만원)이었다. 






예상치 못한 비용
- 초기 에어컨 클리닝 비용 : 400불 (나머지 부품 비용은 워런티 회사에서) 

- 에어컨 교체 비용 : 9,556불(1,270만원)


추가 손해 비용
- 8주간 게스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5,000불(680만원) 정도의 수익을 포기해야 했다. 그 사이 HOA(관리비)와 고정비는 그대로 나갔다. 휴스턴집의 고정비는 대략 월 600불(80만원) 정도가 나간다. 

- 고정비를 빼더라도 두 달간 14,000불(1,800만원)의 손해가 발생한 셈이다. 


예상되는 추가 비용
-  새로 이사 온 집은 2007년도 집이다. 에어컨의 나이도 집과 똑같이 14살이다. 휴스턴은 날씨 탓도 있고, 에어컨을 여름 내내 끄지 않기에 10-12년 정도를 수명으로 본다고 한다. 곧 사망할 예정이라는 이야기다.

- 이 집은 1,2층 에어컨이 따로 돌아간다. 게다가 집 사이즈가 크다. 교체비용은 3만불(4,000만원) 예상된다. 


미국 집에는 큰 비용이 들어가는 두 가지가 있다. 에어컨과 지붕.
둘 다 대략적인 수명이 있고, 수명이 다하면 교체를 해야 한다.
교체에는 비용이 들어간다. 그것도 큰 비용이. 그리고 교체는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그런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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