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몽 Aug 23. 2024

초록 잔디를 유지하는데 드는 비용

모든 보기 좋은 것들에는 돈이 드는 법


"자기야, 어제 본 집 오퍼가 저녁 5시 마감이래. 15분 남았는데 오퍼 넣어 말어?" 

남편으로부터 그 전화를 받은 지 정확히 75분 만에, 우리의 이사가 결정된다. 


원래 큰 일은 얼렁뚱땅, 그렇게 쉽게 결정되고 그러는 거 아닌가? 



 




"나 있다 6시에 집 하나 보려고 예약했어. 자기 시간 되면 같이 보고, 아니면 나 혼자 보고 올게"

시계를 보니 오후 4시가 막 넘었다. 금요일 저녁부터 밤까지, 토요일인 오늘은 아침부터 지금까지 배드민턴장에 묶여있었다. 동네 토너먼트에 아들 둘이 참가하는 중이었으니까. 

승패에 따라 다음 일정이 정해지는터라 어딜 갈 수도 없었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였다. 챙겨 온 과자는 몇 개 남았지만 목구멍에 들어가진 않는다. 얼음 동동 띄워진 라테 한 잔이 간절했다. 

가장 괴로운 건  배드민턴장 안에는 등받이 의자가 없다는 거다. 덕분에 스테로이드 주사로 겨우 진정시켜 둔 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었다.  또 안에는 얼마나 시끄러운지, 남편의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야? 

분명 이제 이사를 포기하기로 하지 않았던가? 

그만 보자고 했던 게 불과 이틀 전 아닌가? 

갑자기? 뭐에 꽂혀서? 


 


그날 저녁 6시, 우리 다섯 가족은 중개인과 함께 어느 낯선 집의 현관문을 넘었다. 

외관은 벽돌로 꾸며져 있고, 실내 면적은 4,778sqft(134평)에 달하는 대저택이었다. 1층에는 오피스와 방 2개,  2층에는 플레이룸과 극장 그리고 방 3개가 있었다. 


2층 계단을 올라가니 탁 트인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보통 놀이 공간으로 쓰이는 플레이룸이었다. 그리고 맞은편으로 초록이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뭔가에 홀리듯 발코니 쪽으로 향했다.


융단같이 펼쳐진 골프장 잔디, 탁 트인 하늘, 살살 불어오는 바람, 야자수 3그루, 커다란 바위에 둘러싸인 수영장, 동그란 스파까지. 이곳은 집이 아니었다. 리조트였다! 




내가 선호하지 않는 네모난 누런 타일도, 집안 곳곳의 어두운 밤색 캐비넷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 이때는 '이런 뷰'라면 매일 보고 싶다는 생각을 나도 하긴 했다. 휴양지인 칸쿤 갈 필요 없이 집에서만 있어도 충분히 즐기고 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이 집에 진짜로 오퍼를 넣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걸리는 부분들이 많았으니까. 


세 명의 학교가 모두 바뀌는 점

동네 친구가 중요했던 막내에게 적당한 동네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

남편 없이 이사를 혼자 해야 한다는 점

새로운 중고등학교가 어렵다고 소문난 학교라는 점

중고등학교까지 자전거 길이 조금 멀어 보이는 점

등등 




그래서 오퍼 마감까지 15분 남았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당황했다. 일요일에도 나는 여전히 배드민턴장에 있었고, 전화를 받았을 때는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이었다. 어제 집을 본 후에 아직 제대로 대화 할 시간도 없었잖아? 

그래도 뭐, 닥치면 다 되는 법이다. 혼자 이사도 했고, 무사히 새 학교로 서류도 옮겨졌으며, 아이들은 적응하며 살기 시작했다. 성적은 아직 나오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는 미처 보이지 않던 것이 있었으니 바로 잔디다. (몰랐던 건  잔디만은 아니지만)

앞마당 잔디 한쪽이 상태가 좋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홈디포 같은 곳에서 파는 네모난 판으로 된 잔디를 대충 덮어둔 상태였다. 장당 3불도 안 하는 그 잔디는 집을 팔 기 위한 눈가림이었을 테고, 다섯 명 모두 몰랐으니 결과적으로 훌륭한 전략이었던 셈. 물을 더 뿌려주며 살아나길 기다렸지만 소식이 없었다. 


그대로 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매일 드나들며 보이는 부분이라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었다. 



지난주, 2주에 한 번씩 오는 가드너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이 잔디를 어떻게 복구할 수 있는지. 


아저씨 말로는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어 일반 잔디를 심어서는 어차피 다 죽는단다. 그래서 나무를 자르던지, 그늘에서 잘 자라는 특수 잔디를 깔던지 해야 한다고. 그 잔디는 8월까지만 생산된다는 말도 덧붙인다.  


나무 자르는 비용은 1,000불(134만원)이 넘고, 잔디 교체 비용은 700불(94만원), 그냥 사는 비용은 0불이다. 

우리는 잔디를 교체하기로 결정했다. 이 집에는 오래 살기로 했다. 이 집에서는 충분히 즐기며 살기로 했다. 한번 깔면 계속 잘 살지 않겠는가? 





우리 집 고정비
- 가드너 : 매달 80불(10만원)

- 초록 잔디, 나무, 꽃들을 유지하기 위해 주 5일 나가는 수도세 : 모름

예상치 못한 비용 
- 잔디 교체 : 700불(94만원)


예상되는 추가 비용
-  
매해 새로운 흙으로 나무 둥지를 덮어준다. 그 위에는 멀치(mulch)로 다시 덮는데, 잔디가 아닌 곳은 모두 멀치로 덮인다고 보면 된다. (멀치는 색을 입힌 나무조각을 말한다. 수분을 보존하고 잡초를 막아주는 효과도 있지만 다 떠나서 새 멀치로 덮으면 기가 막히게 이쁘다) : 모름 

때 되면 꽃도 갈아야 하고, 잡초가 생기면 약도 뿌려야 한다. 큰 나무의 경우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도 해줘야 하는데 그것도 꽤 큰돈이 든다고 들었다. 새로 온 집은 14살이 된 나무가 네 그루나 되니 나중에 얼마나 들지 참... 


보기 좋은 떡은 그만큼 돈이 많이 든다. 미국에서는 더 그렇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아끼고 있는데 대체 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