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를 읽었다. 웹싸이트를 돌아다니다 보면 이런저런 책에 대해 언급된 내용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우연히 스토너』를 발견했다. 시립 도서관에 가서 빌리려고 찾아보니 다 빌려가고 없다. 그런데 주말에 가끔 가는 한성대 도서관에 있었다. 잘됐다 싶어 빌려다가 읽으려고 보니 전에 읽었던 책이다. 내용을 보니 알겠는데 내가 제목만 잊어버린건가 모르겠다. 읽은 책이었어도 다시 읽었다. 다시 읽어도 재미있다.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사일을 도우며 컸다. 부모를 보며 자신도 농부가 되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버지가 어느날 불러 앉혀놓고 대학에 가라고 했다. 대학에서 농업에 대해 공부한 후 돌아와 농사를 지으라는 것이다. 대학에 간 스토너는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대학에 남아 학생들을 가르친다. 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친구를 전장에서 잃고 별로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결혼해 아이를 낳는다. 하지만 까다롭고 이기적인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사랑스러운 딸과 거리를 두게 된다.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대학에서 만난 제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학교에서 구설수에 올라 서로의 인생을 더 망치지 않기 위해 헤어진다. 결국 스토너는 연인을 잃고 크게 상심하여 며칠을 앓아누웠다.
내가 관심을 가지게 된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는 원인이 불분명한 엄청난 고열에 시달렸다. 겨우 일주일이었지민 기운이 쭉 빠져서 몹시 수척해졌을 뿐만 아니라 후유증으로 청각마저 일부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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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인 그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더 늙어보였다. 젊었을 때처럼 풍성하고 말을 듣지 않는 머리카락은 거의 완전한 백발이었으며,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패었고, 눈은 푹 꺼져 있었다. 캐서린 드리스콜과의 연애가 끝난 그 여름에 시작된 청각장애는 해가 갈수록 조금씩 악화되어서 이제는 그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고 눈을 강렬하게 빛내는 모습이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당혹스러운 생물을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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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청각장애는 조금 묘한 구석이 있었다. 그는 자신과 직접 대화하는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시끄러운 방 안 저편에서 사림들이 낮게 웅얼거리며 나누는 대화는 완벽히 알아들을 때가 많았다. 이 청각장애 술수를 통해서 그는 자신이, 젊은 시절 유행하던 표현을 빌리자면, ‘캠퍼스의 괴짜’로 여겨지고 있음을 점차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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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이런 사건들을 양분 삼아 점점 자라나서, 마침내 스토너의 행동에 대부분 이런저런 일화들이 곁들여지는 지경이 되었다.
스토너가 열병을 앓고 청력을 잃고 난 후의 상황을 묘사한 내용들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머리를 기울인다든지 집중하느라 눈을 반짝반짝 뜨고 듣는 대목은 내가 하는 행동들이다. 어떤 때는 잘 알아듣다가 어떤 날은 전혀 못알아듣기도 해 술수라도 부리는 것처럼 일관성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할 때가 있다. 저자인 존 윌리엄스는 청각장애를 겪었거나 주위에 청각장애인 사람이 있나보다. 이렇게 세세하게 묘사를 잘하기는 어렵다.
『스토너』를 읽고 나니 다른 작가들은 청각장애를 어떻게 묘사했는지 궁금해졌다. 청각장애를 묘사한 책만 찾아서 읽기보다 『스토너』처럼 우연히 발견하고 싶다. 그러려면 책을 얼마나 많이 읽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지만 시도라도 해봐야겠다. 그동안 소설을 많이 읽었지만 청력을 잃는 내용에 관심이 생긴 건 처음이라 신기하다. 앞으로 책읽기가 더 재미있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