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가 더 이상 장애가 아닌 때

by 운틴

호텔 같은 곳에 혼자 머물게 될 때 생기는 감정은 재난상황에 대한 두려움이다. 평소 화재 뉴스를 보면 ‘내가 저 곳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안할래야 안할 수가 없다. 그래서 숙소에 혼자 있을 때 화재 경보를 못들으면 어쩌나 하며 밖에서 불이 났다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못들어 피신을 못하게 될 경우를 상상해본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소리를 듣고 탈출했는데 타는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오기 시작할 때 불이 난 주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다른 핸드폰은 모르겠으나 내가 쓰는 핸드폰은 장애친화적이어서 시각장애인이 쓰기에 아주 편리하다고 하는데 청각장애인이 쓰기에도 편리하다.


우선 보청기와 핸드폰을 블루투스로 연동시킬 수 있어 전화가 오면 보청기가 이어폰 기능을 한다.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들을 때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청기로 들을 수 있다.


나는 화재감지기나 연기감지기의 소리를 잘 못듣는데 이 소리를 핸드폰에 체크해두면 비상시에 핸드폰의 알람이 작동한다. 전에 지하철 소리를 체크해두니 지하철이 들어올 때 갑자기 핸드폰에서 불빛이 번쩍이고 소리가 나서 깜짝 놀라 그 기능을 해제했다. 그후 이 기능을 잊고 지내다가 최근 다시 생각났다.


이틀 전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는데 핸드폰에 알람이 떴다. 뭔가 하고 보니 ‘이상 소음 감지’라고 떠있다. 드라이기를 켜놨나 싶어 전원을 빼놓고 다시 보니 메시지가 사라지지 않는다. 지하철을 탄 후에 남편에게 전화해서 내가 못들은 소리가 감지되는지 확인해달라고 했다. 잠시 후 연락이 오길 이상없다고 했다.


확인은 못했지만 무슨 소리가 나긴 났을 것이다. 그래서 핸드폰을 켜고 손쉬운 사용>소리 인식>에서 화재경보, 사이렌, 연기경보, 가전기기 소리, 초인종, 노크 소리에 핸드폰이 알람을 울릴 수 있도록 다시 체크해두었다. 이 외에도 유리 깨지는 소리, 주전자 물 끓는 소리, 흐르는 물 소리(수돗물 틀어놓을 때), 아기 울음 소리, 고함 소리에 반응하게 할 수 있고 그 외에 개인적으로 추가하고 싶은 소리가 있으면 따로 등록할 수 있다.


이 정도면 청각장애인 뿐만아니라 노인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가끔 화장실에 들어가 변기에 앉아있는데 물 흐르는 소리가 난다며 알림이 뜨는 난감한 때도 있다. 시각장애인이라면 알림이 문자로 뜨지 않고 음성으로 들릴텐데 이렇게 세세하게 말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누군가가 가까이 있다면 안심이 될 것 같다. 매일 화장실 불을 켜놓고 나오는 남편에게도 불을 끄라고 말해주는 AI가 있으면 좋겠다. 머지않아 우리는 로봇 도우미를 곁에 두고 의지하며 살게 되지 않을까.


우리집 가스밸브에는 타이머가 설치되어 있는데 30분 짜리다. 소방서에서 와서 안전장치로 설치해주었다. 가스밸브 타이머는 무슨 요리를 하던지 30분이 되면 저절로 잠긴다. 요즘은 사골 곰국을 끓여먹지 않지만 냄비를 가스에 올려둔 걸 잊어버려 냄비가 탈까봐 걱정할 일은 없다.


지금은 이 정도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어 실시간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문장으로 번역하거나, 언어장애인이 문장으로 입력한 글을 음성으로 바꿔주는 등 장애인이라는 걸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기기들이 우리 몸의 일부처럼 작동하는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면 나 같은 사람은 진정한 사이보그의 반열에 오르게 될 터이다.


이미 거의 모든 유튜브나 영화를 자막을 병행해서 보고 있으며 교회 예배도 현장에서 줌 자막을 보면서 예배를 드린다. 환경이 이렇게 바뀌면 내게 청각장애가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토론에 참여하여 발언도 한다. 한때 못듣는다는 이유로 기죽어 살던 나는 없다. 이런 세상이 될 줄은 꿈도 못 꾸었는데 누군가 꿈꾸었고 세상은 바뀌었다. 어쩌면 미래에는 아무도 늙지 않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감히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어마어마한 상상을 해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스토너』와 청각장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