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동병상련

by 운틴

모임에 가면 늘 반겨주는 선생님이 계시다. 이 분이 오시기 전에는 딱히 한 사람과 짝지어 지내기보다 사람이 있으면 있는 대로 어울리고 없으면 혼자 있다가 오곤 했다. 어느 날 사람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내 장애에 대한 고백을 한 적이 있다. 처음 듣는 분이 대부분이고 알고 있는 분도 계셨지만 마치 커밍 아웃 하듯이 공개적으로 얘기하는 건 처음이었다. 자리에 돌아오자 A선생님은 나를 반기며 자신도 같은 장애가 있다고 했다. 겉으로 보기엔 비장애인처럼 보였는데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보청기를 보여주시며 나와 똑같은 상황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너무 놀라 손을 덥석 잡았다. ‘세상에, 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 아니었군요.’ 하며 서로 신기해했다. 다 말은 못 해도 일상에서 세세하게 불편했던 걸 쏟아놓으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그날 이후로 A선생님과 나는 단짝처럼 지냈다. 모임에 가면 옆자리를 맡아놓고 먹을 게 있으면 챙겨주고 안 보이면 찾고 전화하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은 결혼식에 같이 갔는데 원탁 테이블에 앉아 7-8명이 대화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이 넓고 주위가 시끄러워 맞은편에 앉은 사람이 하는 말이 잘 들리지 않았다. A선생님이 옆에 앉아 계셨는데 선생님은 잘 들리는지 궁금했지만 대화 중에 딴청을 피울 수가 없어 태연히 알아듣는 척했다. 나 같은 사람은 안 들려도 분위기를 망칠까 봐 잘 듣고 있는 척할 때가 많다. 눈을 똥그랗게 뜨고 경청하는 것처럼 보여도 겉모습만 그럴 뿐이지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한다. 안 들린다며 크게 말해달라고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애써 무슨 말인지 확인했는데 별 얘기가 아닌 적도 있어 무안해지기도 한다. 그런 마음을 기본적으로 깔고 있어서 A선생님과 나는 쌍둥이 자매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얼마 전에 갔던 모임에서는 입장이 달랐다. 농인들이 모이는 지역 행사가 있어서 갔는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아 유일하게 아는 K를 찾아 그녀 옆에 앉았다. K는 붙임성이 좋아 이미 그녀 옆에는 다른 사람 둘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다른 두 분은 나와 같은 구화인이었다. 다른 때 같으면 수어를 많이 쓰는 분위기라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지 않는데 이날은 문득 한 사람이 소리를 내어 말하기 시작하니 구화인 셋이 수다를 폭포처럼 쏟아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갑자기 K가 외톨이가 되었다. 그녀는 언어 장애로 수어나 문자로만 대화가 가능하다. 나는 수어로 K에게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그런데 다른 구화인 둘은 아는 수어가 거의 없어서 내가 통역해줘야 했다. K가 그네를 타는 수어를 하며 그곳이 자기 고향이라고 하자 우리는 ‘그네’ 하면 떠오르는 지명을 생각해 내려고 끙끙거렸다. 짐작대로 그네 탄 춘향이가 생각났고 K의 고향이 남원이라는 걸 알아맞혔다.


얼마나 잘 듣는지는 상대적이다. 구화인 셋이 청인과 같이 있을 때는 청인만큼 못 들어서 아쉬워한다. 구어로 수다를 떠는 우리 셋을 보며 농인인 K의 기분이 나빴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미안했다. 그렇지만 미안한 마음은 잠깐이고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수다를 참기는 어려웠다. 왜냐하면 수어를 못하고 듣지는 못하지만 말은 쉽게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처지에 있다고 해서 나무라거나 욕할 수는 없다. 마음이 불편해도 참아야 할 때가 있으며 다른 사람을 서운하게 하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언제 어디서 위치가 바뀔지 모르기 때문이다. 늘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반면교사로 삼아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힘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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