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장애 또는 장애에 대해 검색하다가 글 하나를 읽었다. 글을 쓴 사람은 어떤 장애인이 쓴 글을 읽으며 그가 창피했을 거라고 언급한다. 장애인이라는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이런저런 위선의 말을 썼다며 그걸 간파해 낸 자신의 영리함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처음 장애를 가지게 되면 부끄러울 수 있다. 이전과 달라진 자신을 비교하며 한탄할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의 몸을 보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부끄러워할 수 있다. 그건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해서이다.
태어날 때부터 남과 다른 몸으로 태어난 사람은 커가면서 다른 사람을 보고 자기가 다르다는 걸 알아차린다. 그래서 중도에 장애를 얻은 사람과는 장애에 대한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똑같은 사람은 없으니 우리 모두 남과 다르게 태어난다. 다른 몸을 긍정하지 않으면 삶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나보다 우월해 보이는 비교 대상은 어느 곳이나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 나는 불행했다. 남들이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 것이 내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질투의 화신이 되었고 가는 곳마다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갖고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잘 들리지 않는다는 걸 자각한 후에는 나를 이렇게 만든 부모가 원망스러웠다. 잘 들었더라면 공부를 잘해서 유학도 가고 인생이 술술 풀릴 것 같았다.
끝까지 거부하고 싶었던 나 자신을 정신 차리게 만든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었다. ‘듣지도 못하면서 왜 듣는 사람처럼 행동하냐’고 잔인하게 직설적으로 말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에야 정신이 번쩍 났다. 듣지 못하면 그런대로 그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그때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 원망스럽고 미웠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여태 나의 참모습을 감추느라 애쓰며 살고 있었을 거다. 그때는 틀렸지만 지금은 맞다. 옳은 게 늘 옳거나 그른 게 늘 그른 것은 아니다. 나는 내 장애가 부끄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