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들과 함께 한 여행

by 운틴

지난주에 내가 속한 농인 모임에서 문경으로 가을 여행을 다녀왔다. 회사에 휴가를 내고 무리해서 갔다. 이쪽 동네로 이사 온 후에 먼 나들이는 처음이었는데 아침부터 너무 긴장했는지 출발 시간이 다 되어 화장실에 들러야 해서 지각했다. 구청 앞에 모여서 버스를 탔는데 구청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나와서 배웅을 해주어서 고마웠다.


농인들 중에는 가족이 같은 장애를 갖고 있는 경우가 있어서 이번 여행에도 가족이 같이 온 분들이 눈에 띄었다.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단점은 정보가 부족하다는 건데 인터넷 덕분에 검색하면 모든 정보를 찾을 수 있어 정보의 차이는 많이 줄었다. 농인이 혼자 여행하는 건 엄두를 내기 어렵고 단체로 여행을 한다고 해도 청인과 섞이게 마련이라 프로그램이 청인 위주로 돌아가면 낭패를 겪게 된다.


그래서 농인만 따로 모아 여행하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이번 여행에는 노인성 난청이 있는 노인분들이 여럿 계셨는데 그분들은 수어를 잘 모르지만 통역사님들이 따로 일정을 알려드리는 등 챙겨주셔서 같이 다니기에 어려움이 없었다. 먼 여행을 함께 가기는 처음이라 내가 낯설었을 텐데 먼저 말을 걸어주고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눠주는 등 회원들이 나를 엄청 챙겨주셔서 어리둥절했다. 최근에 어디에서 이런 환대를 받은 적이 없어서 몸 둘 바를 몰랐다.


문경새재 관광지에서는 드라마 촬영장에 갔는데 나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촬영장보다는 전에 와본 적이 있는 곳에 다시 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일행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제2관문이 있는 곳까지 열심히 걸어갔다. 다시 모여서 출발하기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서둘러야 했다. 먼 곳까지 와서 당일로 서울에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이 촉박했다. 촬영 세트장 근처, 모이기로 한 장소에 가려고 보니 시간이 없어서 뛰었다. 그래도 전에 딸과 같이 왔던 폭포를 다시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농인들은 한 번 흩어지면 다시 모이게 하기가 어렵다.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려면 일일이 손으로 몸의 일부를 두드려야 하는데 사람이 많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흩어지지 않는 게 중요해서 나같이 개인 행동 하는 사람이 있으면 같이 여행하기 어려워진다.


점심을 먹고 전통시장을 돌아다녔는데 일행 중 부부가 같이 온 두 분을 따라다니게 되었다. 여든 살이 넘은 분들인데 남편분이 농인이고 부인은 그냥 따라온 것 같았다. 살림을 잘하는 분이신지 안 깐 마늘과 버섯을 사는 걸로 보아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 같았다. 늙어서도 챙겨주는 사람만 있으면 귀가 안 들려도 크게 걱정은 안 될 것 같다. 문경 사과를 따는 행사는 재밌었다. 나는 시댁이 사과 과수원을 해서 사과를 몇 번 따보았는데 다른 분들은 사과 따는 게 처음인지 모두 즐거워 보였다. 따서 갖고 갈 수 있는 분량은 개수로 8개였는데 갓난아기의 머리만큼 큰 사과를 골라 딴 분이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사과인데 어떻게 땄나 모르겠다.


어두워진 저녁에 서울에 돌아와 보니 비가 오고 있었다. 집에 갖고 갈 짐이 많아져서 우산을 펴기 어려웠다.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차창 밖으로 문경에 같이 다녀온 일행이 비를 피해 종종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늘 처음 뵌 분이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보니 우리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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