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풍경 수업

by 운틴

‘모두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토요일 수업에 다녀왔다. 농인과 청인이 함께 모여 예술활동을 하는 건데 수어통역과 문자통역이 제공되어 장애의 장벽 없이 같이 소통하는 자리였다. <소리 풍경>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수업은 농인 선생님이 진행하시는데 오늘이 두 번째 수업이었다. 첫 수업부터 참가하고 싶었지만 지인 가족의 결혼식에 참가해야 해서 두 번째부터 갔다. 사람들이 모이자 선생님은 이름표를 붙이자고 제안했고 사람들은 각자 떠오른 이름을 종이에 써서 가슴에 붙였다.


요즘 일이 너무 많아 바쁘고 잠을 못 자서 피곤한 나는 ‘한가함’이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다. 다른 사람들은 ‘구름’ ‘나무’ ‘밀크티’ ‘사과’ 등의 이름을 썼다. 선생님은 구화인으로 어릴 때부터 난청이었다는데 발성이 좋았다. 에이유디에서 나온 직원이 문자 통역을 지원했고 수어통역사 선생님이 수어통역을 하셔서, 지원받을 수 있는 모든 소통 방법이 총동원된 수업이었다.


소리를 느껴보자는 선생님의 지도에 사람들은 각자의 몸에 손을 얹고 소리를 냈다. 각기 다른 높낮이의 소리를 내며 목이나 머리, 가슴이 어떻게 울리는지 손으로 느껴보았다. 나는 가슴이나 등에서는 진동이 잘 느껴지지 않았는데 목이나 목 바로 아래에서는 몸이 울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과 짝을 지어 소리를 느끼기 위해 짝꿍의 등이나 목, 배, 가슴에 손을 대는 게 조심스러웠지만 마음을 열고 느껴보려고 애썼다. ‘아’하는 발성을 길게 하고 있으면 진동이 지속되어 잘 느껴지지만 말을 하고 있으면 발음에 따라 진동이 약해질 때도 있어 차이가 컸다. 단지 소리를 느끼기 위해 말을 하는 거라 서로 아무 말이나 쏟아내 웃음이 터졌다.

몸에서 나는 소리를 촉각으로 느껴보는 일은 일상에서 경험하기 어려운데 전에 음악 공연장에서 우퍼 옆에 앉아 스피커의 진동을 느꼈던 일이 떠올랐다. 그 공연장에서는 청각장애인을 위해 소리의 진동을 느낄 수 있는 의자도 제공해서 음악에 맞추어 몸이 울리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농인에게 소리란 듣는 게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건데 느긋하게 앉아 감각을 느껴보는 시간을 따로 갖는 건 바쁘게 사는 요즘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다음 순서로 풍선이나 플라스틱 컵, 종이컵 같은 물체를 사이에 두고 몸에선 내는 소리를 느껴보았다. 내가 내는 소리, 다른 사람이 내는 소리를 물체를 사이에 두고 느껴보는 건데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만큼 내가 둔감해진 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여러 재질의 물체를 늘어놓고 만져보면서 촉각을 소리라고 상상하여 표현하며 소감을 나누었다. 나는 아주 부드러운 클레이 점토를 골라서 아기의 볼을 만지는 느낌이라고 발표했다. 점토는 만지는 느낌도 그렇지만 점토를 어떻게 주무르냐에 따라 모양이 바뀌는 것이 아기들이 커가면서 점점 변하는 것이 연상되었다. 클레이 점토의 부드러움을 소리로 상상해서 표현하자면 ‘부드러운 소리’라고 할 수 있는데 소리가 어떻게 부드러울 수 있냐고 반박할 수 있지만 머리로 상상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활동이라 그냥 느끼는 대로 말했다.


감각에 집중하기 위해 청인은 헤드폰을 끼고 소리를 차단한 채 활동했는데 나는 보청기를 빼면 귀가 들리지 않아 시각도 덩달아 약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활동을 잘할 수 없을까 봐 보청기를 끼고 했다. 일정이 다 끝나고 소감을 나눌 때 헤드폰을 꼈던 청인은 청각을 차단하니 다른 감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시각과 청각이 가장 중요하고 다른 감각은 소홀히 여기게 되는데 물체의 느낌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감각에 집중하는 일은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이라 두 시간 반이 넘는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고 힘이 드는 작업이었다.


농인 선생님이 진행하는 수업은 수어를 배울 때 빼고는 처음이었다. 문자 통역과 수어통역만 있다면 농인도 청인을 대상으로 강의할 수 있다. 처음으로 나도 선생님처럼 강의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선생님은 자신이 끼고 있는 보청기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 장착하는 코르셋 같다고 했다.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때는 보청기를 빼고 되는대로 대화한다고 했다. 보청기를 빼면 아주 홀가분해서 적절한 비유였다. 감각도 감각이지만 그 감각을 어떻게 표현하는가도 중요하다. 아이들만 감각 훈련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른도 무뎌지지 않게 끊임없는 훈련이 필요한데 이날의 소리 풍경 수업이 내게 좋은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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