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청기 새로 하기

by 운틴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한 장애인에게는 전동 휠체어, 스쿠터, 보청기 같은 보조기기가 보급된다. 나는 매 5년마다 보청기를 새로 지급받을 수 있는데 보청기를 쓰다가 5년 정도 되면 신기하게도 바꿔야 할 시기와 딱 맞춰 기존 보청기의 품질이 떨어진다. 지금 쓰고 있는 보청기는 오빠가 소개해준, 멀리 성남에 있는 매장 가서 맞췄다. 보청기를 쓴 지 5년이 지나 새로 장만하려고 보니 성남에 있는 매장은 없어진 지 오래고 그때 보청기를 맞춰준 분과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쪽 일을 하는 아는 사람이 있으면 내 사정을 구구절절이 말할 필요가 없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데 고민이 되었다. 새로운 매장을 찾아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내가 다니는 협회에 있는 다른 농인분에게 보청기를 어디서 맞췄냐고 수소문해 보니 종로에 있는 **보청기에서 맞췄다고 한다. 다른 분에게도 물어봤는데 같은 매장을 알려줘서 농인들이 많이 가는 매장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달 전에 미리 그 매장을 찾아가 어떤 곳인지 알아봤는데 사장님이 청각장애인이었다. 수어와 구어를 모두 쓰는 분이었는데 말을 잘하셔서 속으로 놀랐다. 12월이 되어 보청기를 할 때가 되자 그 보청기 매장에서 연락이 왔다. 사장님은 아주 적극적인 분이어서 내가 언제 보청기를 하면 되는지 기억해 뒀다가 먼저 연락한 것이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보청기 메이커를 말하며 이쪽 제품도 취급하는지 물으니 종류별로 다 있다고 한다. 한 관문을 통과하고 나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과연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이 맞춰준 보청기를 끼어도 되는가 하는 문제였다. 청능사 일을 하는 청각장애인은 처음이어서 청인 청능사에게 보청기를 맞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망설이고 있는데 사장님한테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보청기를 새로 할 때가 되었는데 언제 한 번 방문해 주세요~”


고민하던 문제에 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가 되었다. ‘사장님이 청각장애인이어서 보청기를 맡겨도 되는지 걱정이 됩니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시간은 흘러가는데 마침 회사일이 너무 바쁘고 집도 옮겨야 해서 정신이 없었다. 다른 보청기 매장을 알아볼 여유가 없어 연락을 준 사장님을 찾아갔다. 사장님은 보청기를 몇 개 보여주면서 잘 들리는지 시험해 보라고 했다.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금액의 한도 내에서 선택해야 해서 고가의 좋은 보청기는 선택지에 없었다. 지원금 내에서 구매해도 웬만큼 잘 들렸다. 양쪽 귀가 모두 들리지 않아도 정부에서 지원해 주는 보청기는 한쪽뿐이다. 나머지 한쪽은 개인이 부담해야 하고 몇 백만 원짜리 보청기를 사는 건 부담이 커서 그냥 한쪽만 끼기로 했다.


보청기 색깔을 고르면서 사장님한테 내 걱정을 얘기했다. “제가 이전에 계속 청인 청능사 선생님한테 보청기를 맞췄고 농인 청능사는 처음이라 보청기를 맡겨도 되는지 고민이 됐어요.”라고 했다. 사장님은 본인이 농인이라 어떤 보청기 성능이 좋은지 직접 끼어보고 시험해 볼 수 있다며 자기보다 더 잘 알 수는 없을 거라고 했다. 30년 넘게 보청기를 끼어본 사람이 더 잘 알지 직접 끼지 않고 테스트하는 사람이 더 잘 알겠냐고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수긍이 갔다.


나는 귀가 안 들린 지 아직 이십 년이 채 안되어 청인 행세를 하는데 누가 나에게 “말을 잘하시네요”라고 하면 기분이 안 좋다. 그런데 그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농인 사장님이 어릴 때부터 안 들렸다고 하는 얘기를 듣고 그렇게 오랫동안 듣지 못한 것에 비해 “말을 잘하시네요”라고 한 것이다.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남에게 하지 말라고 공자님이 말씀하셨다(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 쓴웃음이 나왔지만 어쩔 수 없다. 그게 나란 사람이니까.


보청기 색을 베이지로 하겠다고 하고 매장을 나서다가 다시 돌아갔다. 요즘은 보청기도 이어폰처럼 다양한 색깔이 나온다. 원래 쓰던 보청기와 색이 같으면 헷갈릴 수도 있고 눈에 잘 띄지 않으면 낀 채로 샤워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눈에 확 띄는 블루오션 빛깔로 바꾸기로 했다. 청각장애인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을 상대할 때 가장 마음이 편하다. 개떡 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듣고 잘못 말하면 그러려니 하고 바로 잡아준다.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단서도 받아와야 하고 새 보청기가 내 손에 들어오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하는데 블루오션 보청기는 얼마나 가볍고 잘 들릴지 한 달 후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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