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와 분노>라는 제목의 책이 있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가 쓴 책이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파격적인 형식과 책의 내용에 푹 빠졌다. 지금 쓰고 있는 글의 제목을 고민하다가 이 책이 떠올랐는데 책 제목의 ‘분노’를 ‘농인’으로 바꾸려고 보니 왜 농인은 화가 많을까 궁금해졌다. 보이는 건 많은데 채워지지 않는 것이 많아 화가 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욕망은 듣는 것보다 보는 것에서 더 많이 생겨난다. 편견인지 모르겠지만 시각장애인들은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을 자주 보는데 나는 거의 하루 종일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소리와 농인은 별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소리에 대해 포기하고 살거나 애당초 소리는 나와 관련이 없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며칠 전 신기한 모임에 다녀왔다. 농인과 청인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소리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고 했다. 소리를 볼 수 있는 풍경으로 만들어 본다고 했다. 농인과 청인이 같이 뭘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가서 보니 문자 통역과 수어 통역을 제공하여 소리를 듣고 못 듣는 차이를 없앤 예술활동이었다.
이 수업에서 소리가 만드는 파동을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을 했다. 찾아보니 초등학생들에게 소리의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실험을 할 때 쓰는 방법과 비슷했다. 소리 전문가인 선생님이 원리를 설명해 주셨다. 우퍼를 통해 나오는 소리의 진동을 레이저 포인터로 건드려서 하얀 벽에 쏘면 영상이 생긴다. 우퍼를 통해 크게 나오는 소리 때문에 공기가 진동하면 레이저 포인트에서 나오는 빛도 같이 진동하는데 음악에 따라 벽에 다양한 빛의 패턴이 생긴다고 했다.
청인과 농인이 같이 앉아서 소리를 눈에 보이는 빛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면서 소리는 꼭 귀로만 듣는 게 아니라는 걸 배웠다. 컨트롤러를 조작하면 이에 따라 소리가 변하는데 그 소리에 맞추어 벽에 그려진 그림의 모양이 변했다. 농인은 소리보다는 벽에 나타나는 빛의 모양에 더 집중을 하다 보니 청인과는 다른 패턴의 그림과 소리가 나왔다. 어느 쪽이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 없지만 집중하는 감각에 따라 소리가 다르게 그려지는 경험을 하면서 어느 한쪽이 낫거나 못 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상으로 나타난 패턴을 보면서 작곡을 할 수 있다는데 그렇게 농인도 얼마든지 음악을 만들 수 있다.
활동을 지도해 주신 선생님은 인공와우를 사용하는 농인을 대상으로 소리와 관련된 활동을 하며 농인이 음악을 만들거나 듣는데 도움을 주는 일을 하신다고 했다. 이 날 농인은 소리와 상관이 없다는 내 편견이 깨졌다. 소리와 농인을 연결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은 처음 만났다. 농인도 음악을 이용한 활동을 통해 이전보다 더 소리를 가까이하며 살 수 있다면 나는 왜 그동안 이걸 모르고 살았는지 아쉬웠다. 잘 안 들리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기보다 그냥 편하게 귀를 닫고 사는 게 편하기 때문에 소리에 대한 관심을 끄고 살았던 것 같다.
문득 회사 행사 때 초대받아 공연한 농인 3인조 아이돌 그룹 <빅오션>이 생각났다. 농인 아이돌 댄스그룹을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AI와 각종 음향기기를 통해 박자와 소리를 맞추고 수어로도 공연하는 그들을 보며 감탄했는데 생각해 보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지금은 AI 시대가 아닌가. 보조기기를 잘 이용하면 박자를 맞추고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출 수 있다. 듣지 못한다고 해서 감히 엄두도 못 냈던 일이 많다. 그러나 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도와줄 사람을 찾을 수 있고, 함께 할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듣지 못하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마음을 버리고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몰라’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꿈을 갖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