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디자이너, 성장할 틈을 찾아서》
PM님이 내 역량을 인정해줬고, 나는 큰 기대를 안고 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전체 디자인 가이드를 잡고, 서비스 구조를 UX 관점에서 고민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다. 하지만 그 기회는 너무 쉽게 무너졌다. 프로젝트는 돌연 중단되었고, 회사는 '합병'이라는 큰 변화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한 분이 리드로 있는 팀에 들어갔지만 그분보다 기회가 적었고, 주도권도 없었다. 아무리 내가 아이디어를 내고, 정리를 잘 해도 그분의 승인 없이는 어떤 것도 진행할 수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사수분이 UX에 대한 이해도나 기술적 역량이 부족하다는 발견한 것이었다. 파일은 정리가 되어 있지 않았고, 패딩 값은 소수점으로 들쑥날쑥했고, 내가 공부한 UX사고와 많이 달랐다. 비주얼 디자인이 더 강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사수분의 디자인에 대해 의견을 내기가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해보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의견을 정리해서 어필했다.
나는 비주얼보다는 UX사고로 설계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만난 리더는 자신만의 방식에 갇혀 있었고, 자존심이 강했으며, 공유도 하지 않았다. 디자이너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조직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 생각은... 회사 임원분들도 같은 생각이었다. 내가 의견을 냈을 때, "시아님은 기획자가 하고 싶은거예요? "라는 질문 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하...그게 아닌데..."
기획자와 디자이너, 개발자의 협업은 '역할 분리'가 아닌 '단절'이었다. 그런 구조 속에서 나는 혼자 공부하고, 실무를 정리하고, 계속해서 어필해야만 했다.
대표님께 면담을 신청했다. 나는 성장하고 싶다고, 나는 내 포지션이 프로덕트 디자이너인 만큼 UX적인 사고를 나도 서비스에 녹이고 싶다고!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만 해야하는 지금과 같은 환경에서는 내 역량을 펼칠 수 없다고 말했다. 대표님은 내 말을 듣고 나를 'R&D 조직'으로 배치했다. 듣기엔 좋아 보였지만, 실상은 무기한 대기조였다.
업무는 없고, 팀은 느슨했고, 프로젝트는 언제 생길지도 몰랐다. 나는 다시 어필했다. "저는 B2C 서비스를 하고 싶어요. 사용자와 직접 만나는 제품을 설계하고 싶습니다."
내 역량을 인정해주셨던 PM님이 회사를 떠나시기 전, "이제 시아님이 나아고자 하는 역량을 이끌어서 사고해줄 사람들은 없다. 알아서 살아남아야한다. "라고 남기시고 떠나셨다. 나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어필을 해도 말은 UX사고 하는 거 좋다고 하지만, 디자이너에게 그러한 기회를 잘 주지 않는 회사라는 걸.... 조직이 주지 않는 기회를 내가 만들기로. 그리고, 언젠가는 진짜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내가 만든 제품을 자랑할 수 있게 되길 꿈꾸며, 내 역량을 계속 어필했다.
그렇게 B2C팀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