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2013년. 첫 아이가 태어났다.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의 끝자락에, 예정일을 6일 앞두고 세상에 나온 우리 아들.
엄마가 고생할까봐 초산임에도 큰 고생 시키지 않고 건강하게 태어나 주었고, 성격이 순하고 마음이 예뻐서 집에서는 물론이고 유치원 등 기관에서도 한번도 문제행동 없이 잘 지내고 사랑받는 아이였다.
나는 항상 복받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직장이 있고, 집도 있고 아이도 너무 예뻐서 특별히 걱정하며 살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2019년 아이가 7살이던 해 동생이 태어났다. 터울이 6살이나 나서 걱정했지만, 첫째는 동생을 잘 돌봐주기도 하고 많이 예뻐해 주었다. 부득이 둘째 육아로 전보다 신경을 많이 써주지는 못했지만 고맙게도 여전히 첫째는 동생을 시기하거나 질투하지도 않고 너무나 잘 지내주었다.
그 해 10월, 갑자기 아이가 피곤하다며 늦은 오후잠을 자더니 일어나서는 다리가 아파 걷지 못하겠다고 절뚝거렸다. 다리를 보니 발등이 부어있었고, 이상하게 종아리와 허벅지에 붉게 반점들이 올라와 있었다. 가을이지만 모기가 기승이라 모기에 물린 자국인가 생각해보니 그것 치고는 모양이 이상했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엑스레이, 피검사, 소변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데 응급실 의사선생님이 잠깐 와보라며 컴퓨터가 있는 방으로 불렀다. 나에게 구글에서 이런저런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 아들이 아마도 '자반증'인것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 의학 서적을 펴놓고 나에게 이러한 병이라며, 심각한 복통과 관절통 등을 호소하지 않으면 입원의 필요는 없다고 안심시켰다. 둘째가 100일도 안되어 통원하기로 하고 집에 왔다.
응급실에서 고생하느라 제대로 먹지도 못해 오는길에 죽을 샀다. 맛있다고 몇 모금 먹더니 다 구토를 했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제서야 인터넷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알레르기 자반증, 혹은 헤노흐 쇤라인 자반증이라고도 부르는 이 병은,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혈관염으로 심한경우 신장병을 얻을 수도 있다는 무서운 병이라고 했다. 치료법도 원인도 모르고 그저 스테로이드와 면역억제제 등으로 증상만을 완화시키는...
너무 무서웠다. 나는 다시 응급실로 향했다. 시간이 지나서인지 의사선생님이 바뀌어있었고, 모든 검사를 다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입원을 시켜달라고 사정해 보았으나, 외래 예약이 되어있는데 입원 할 필요가 없다며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아이가 밥도 못먹고 구토를 계속 하고 너무 아파한다고 울며 사정했지만 대답은 같았다. 지역에서 그나마 제일 큰 상급종합병원이어서 내원한건데... 그때 지금 다니는 병원 응급실로 다시 달려갈 걸, 생각하면 후회가 많이 된다.
급한 대로 인터넷 신장병 카페에 가입하여 글을 읽기 시작했다. 급성기에는 무조건 누워있고 안정을 취하라는 말... 아이는 배가 아프고 힘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흰죽만 겨우 입에 댔다. 일단 걷지 않게 하고 누워서 안정시킨 후에 외래 내원일에 병원에 갔다.
입원을 원했음에도 외래에 방문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교수님께 얘기하니 본인도 황당하다는듯, "응급실에서 그랬어요? 왜그랬지?" 라는 반응이었다. 담당 교수님은 당장 입원하자고 했다. 자반증에서 보일 수 있는 관절통, 복통, 자반(피부에 나타는 붉은색 반점, 점상출혈 등) 모든 증상이 다 나타났고, 자반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장 침범여부로, 단백뇨가 나오는지 당분간 관찰해야 한다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큰아이는 입원을 했고, 병원에 올 때 걸어서 인지 종아리에 자반이 추가로 더 올라왔다. 응급실에서 입원시켜줬다면 이렇게 아이가 고생하지 않았을 텐데 원망은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 아이보다 중한 환자가 더 많을 것이고, 매번 최악을 보는 사람의 눈에는 심각하지 않다고 느꼈을 수 있으니까. 나중에서야 자반증 자체가 드문 질환이기 때문에 대형병원 몇군데 빼고는 잘 모를 것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입원 내내 침상생활만 했고,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걷지도 못하게 했다. 마침 폐렴기가 있어 폐렴치료도 같이 하였다. 나는 밤마다 아이를 재우고 신장병 카페에서 자반증에 대한 글을 읽었고, 휴게실에서 엉엉 울며 우리 아이의 상태에 대해 정리를 했다.
아이가 입원한 일주일 간 나는 너무 마음이 아파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자지 못했다. 첫째때 그렇게 어렵더니 병원에서는 힘들어서 인지 자연스레 단유가 되었다. 둘째는 엉겁결에 집에 남겨져 친정엄마가 봐주시고, 단유가 끝날 때 쯤 화장실에서 유축을 하니 모유의 색이 연두색이었다. 힘들어서 나까지 몸이 이상해진건가 검색해보니 연두색 모유가 정말 좋은 모유라고 했다. 길게 수유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 글을 읽으니 또다시 눈물이 났다. 그 때 병원에서 흘린 눈물이 정말 영화 제목처럼 1리터는 될 것 같다.
잠든 아이의 얼굴만 바라봐도, 아니 눈을 감고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났다.
병원에서 제대로 먹지도, 움직이지도, 해를 보지도 못한 아이는 점점 얼굴이 누렇게 뜨고 시들해져 갔다. 너무 해맑고 사소한 것에도 깔깔거리며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웃어대던 아이는 웃음을 잃었다. 누우면 잠이 오지 않는다고 했다. 고작 만으로 5년을 살았을 뿐인데 구부정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아이같지 않았다. 가슴이 찢어지는것 같았다.
자반이 점점 사라져서 일단 퇴원을 하고, 입원때 듣지 못한 검사결과를 듣기 위해 외래에 방문했다. 걷지 않는게 좋다고 하여 휴대용 유모차를 주문했다. 아이는 7살이나 되어 유모차에 앉아 있는게 부끄럽다며 담요로 얼굴을 가렸다. 검사결과 소변에는 크게 이상이 없으나 대변검사에서 혈변이 나왔다고 한다. 위장까지 침범하여 아이가 밥도 못먹고 구토했던거다. 퇴원하고 단백뇨가 검출되는 경우도 많아 6개월 이상 추적관찰 해야한다고 했다.
큰아이는 두달간 유치원에 가지 못하고 집에서 생활했다. 앉거나 누워있었고, 화장실은 소변통을 주거나 내가 업고 다녔다. 머리는 길어 더벅거렸고, 통통하던 얼굴은 점점 말라갔다. 부끄럽지만 유치원 선생님, 학원 선생님과 통화할때도 너무 슬퍼 계속 울었다. 너무 무섭고, 어떻게 해야할 지 몰랐다. 30년을 넘게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었다. 모두들 내가 힘을 내야 된다고,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나는 자꾸만 무너져 내렸다.
이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거야, 잠깐 몇달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영화처럼 초능력이 있어 아이가 다시 건강하던 때로 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아님 어떤 신적인 존재가 내게 와서 나의 무엇이든 내어놓으면 아이를 아프지 않게 해주겠노라 하면 뭐라도 주고 싶었다. 매일 눈을 뜨는게, 시들시들하고 기운없이 누워있는 아이를 보는게 너무 고통스러웠다.
자가면역질환의 일종인 자반증. 생소한 병명 앞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저 밤새워 공부하고 사례를 연구할 뿐이었다. 다른 환우들의 사례와 검사수치 보는법, 예후 등등 찾을 수 있는건 다 찾아보았다. 자반증은 식이와 활동제한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유제품, 고기, 밀가루, 인스턴트, 맵고 짠 것 등 혈관에 염증을 유발할 수 있는 것들을 먹으면 재발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1년 반이 지난 지금도 큰아이는 그렇게 좋아하던 치킨을 먹지 못하고 있다. 피자가 너무 먹고싶다고 하면 쌀식빵에 케찹과 치즈로 흉내만 내준다. 치킨도 에어프라이어에 닭다리살을 소량 구워 소스를 만들어주는 정도. 빵도 쌀빵을 구해서 먹인다. 긴 시간 지칠 법도 한데 고맙게도 이해하고 잘 따라준다.
길가다 음식점만 지나가도 눈을 질끈 감는 아이를 보면 아직도 가슴이 너무 아프지만, 어떻게든 견뎌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