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있어 내 인생이 한결 더 수월해
정리해고를 겪고 난 이후로 어떤 날은 잘될 거라는 자신감이 가득한 날이 있는가 하면, 어떤 날은 자신감이 끝도 없이 곤두박질 치는 날이 있다. 300개가 넘는 지원서를 냈고, 세상에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부족함을 마주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에 있었더라면 마주하지 않아도 될 나의 부족함과 아쉬운 모습을 굳이 여기서 느끼고 있을 때가 있다.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해결될 건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마음을 놓고 쉴 수 있는 내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 나의 언어로 소통한다는 것이 지친 내 마음을 위로해주지는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하고는 한다. 아마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가 없었더라면 다시 돌아오는 한이 있다고 한들 한국으로 돌아갔을 거라고 장담한다. 위풍당당하게 돌아가고 싶었던 3년 전의 나와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나는 우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움직이고 매일 해야 할 루틴을 짜고 조금이라도 더 생산성 있게 살아가려고 한다. 결국은 다 멘털 싸움이니 계속 무기력하다, 우울하다고 생각하면 진짜 내가 우울하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니까. 그럼에도 가끔 스쳐 지나가는 나의 불안이나 우울, 걱정을 읽는 그는 항상 나를 대견하다고, 대단하다고 해준다. 머리칼을 한 번 더 쓸어 넘겨주며, 가족도 연고도 없는 나라에 와서 사랑하던 직업을 잃었는데도 무언가 하려는 나를 보면 늘 존경심이 든다고 한다.
"나는 여기에 가족이 있잖아. 내가 코로나로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 나는 우리 부모님 집으로 돌아가면 됐어. 그리고는 생산성 없는 삶을 살기 시작했는데, 너는 여기 가족도, 오랜 친구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멋진 거야."
"네가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아. 지금도 무언가 계속하면서 성과를 만들어 내고 있잖아. 비록 그게 돈이 아닐지라도 네가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야. 근데 너는 그 쉽지 않은 일을 매일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 스스로 조금 더 자랑스러워해도 돼."
"나는 네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알고, 또 일을 하면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도 알아. 그리고 네가 얼마나 좌절스럽고 우울할지도 아는데, 너는 잠깐 우울하다가도 금방 잘 털고 일어나는 거 보면 정말 대단해.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는걸. 넌 나보다 더 강한 사람이야."
이런 말들을 내게 해준다. 함께 살지 않았더라면, 함께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응원과 격려는 듣지 못했을 거다. 부족한 영어여도 늘 나를 참아주고, 장난스럽게 괴롭혀도 나를 있는 그대로를 받아주는 그. 정리해고를 겪었을 때도 내 마음이 먼저 다치지는 않았을까 걱정하며 돈은 걱정하지 말라던 나의 캐나다인 남자친구. 생각해 보면 나는 미래도 준비가 안되어있고 지금 당장 직업도 없는데 그는 나를 사랑한다.
이게 무슨 복일까. 아, 오늘도 힘내야지. 내가 여기서 무너질 수는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