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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Mar 28. 2024

너는 왜 날 사랑하니?

어느 날 불쑥 네게 물었지

나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너는 끊임없이 대답했다. 정리해고를 겪고 쓰리고 아주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나의 자질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내가 설 곳은 어디인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아간다면서 한없이 무기력해졌던 나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날 사랑한다고 했다. 나는 내 인생이 굴곡지지 않아서 좋았고, 크고 작은 아픔은 있었지만 남들에 비하면 평탄하고 비교적 안정적이게 살아왔기에 정리해고라는 풍파가 내게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특히 나처럼 일을 통해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에게는 그 타격이 훨씬 더 컸을 수밖에 없다.


약해지고 싶지 않아서 이 시련이 남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스스로 자꾸 위로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상대적으로' 덜 힘든 일이라며 자꾸 내 감정을 부정했다. 이런 내 말을 들었던 너는 '이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일이야, 너라서 그 강도가 덜하고 더하지 않는데 왜 자꾸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굴어. 슬퍼해도 되고 좌절해도 돼. 네가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것도 때때로 필요한 거야.'라고 답했다. 처음에는 '내가 그랬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또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내가 겪고 있는 건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힘들 필요도 없다고 또 스스로 매섭게 매질을 해댔다. 어쩌면 긍정적인척 했던 것 같기도.


왜 나는 나에게 이렇게 엄하고 자비롭지 못할까. 그런 나를 너는 자꾸만 사랑한다고 한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할 줄 알아서, 하고자 하는 일이 많아서, 하고 싶은 걸 시도하는 자세가 좋아서, 계획과 목표를 세우는 사람이라서, 머물러 있으려고만 하지 않아서 등등 너는 내가 가진 장점들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한없이 못나 보이고 바보 같은데, 너는 날 그래도 사랑하니?


20대 후반에 인생을 다시 살게 되는 것 같다.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어서 그리고 진짜 독립할 때가 와서 인생을 제대로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비로소 내 삶을 책임지는 것은 '나'라는 사실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느끼고 그게 두렵다. 그렇게 흔들리는 나를, 때로는 스스로에게 너무나 잔인한 나를, 가끔은 자존심이고 자존감이고 다 버리고 무기력하게만 있는 나를, 그런 나를 너는 사랑한다. 네 앞에서는 어린아이가 된 마냥 목 놓아 울기도 하고, 한 없이 자신감이 떨어져 부모님 앞에서 하지도 못할 이야기들을 하고, 어느 날은 내가 가수가 된 냥 신나게 노래도 불렀다가 춤도 추고 같이 춤을 추자며 너를 괴롭힌다. 나는 내가 사랑스럽지 않은데, 너는 나를 사랑스럽게 본다.


내가 날 사랑해야지 널 더 사랑할 수 있을 텐데, 거듭되는 실패에 내가 나를 아끼지 못해 너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미안하다. 내 인생에 10분도 채 되지 않을 시간이었을 텐데 그 시간이 내게는 영겁의 시간이었고 내가 나를 가두면서 너를 외롭게 했던 건 아닐까 이제 와서 반성해 본다. 이제 다시 원래의 나로, 자신감 넘치고 당당했던 나로 돌아갈 터이니 너는 늘 그렇듯 네가 사랑스러워하던 날 사랑해 주렴. 내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너를 나도 너를 더욱 사랑할 수 있을 거야.


늘 너에게 나를 왜 사랑하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네가 왜 나를 사랑하는지 알아. 말하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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