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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의 삶, 궁금하신가요?

패션 디자이너는 무슨 일을 할까

by Sean

스스로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하는 것도 부끄러울 만큼 정말 대충 살아가게 만드는 토론토의 겨울.

맨 얼굴에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는 튼튼한 조거팬츠, 후드티 그리고 노스페이스 눕시 재킷. 나의 출근룩이다.

나의 이런 누추한 차림에도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는 걸 보면 캐나다에 사는구나 싶다.


한국에서는 정식으로 회사 생활을 해본 게 아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옷이 나오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 친구들을 보면 생각보다 다양한 과정을 통해서 옷들이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기본적인 큰 틀은 비슷하니, 혹시 패션 쪽에서 일하고 싶으신 분들이나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특히 캐나다에서 패션을 업으로 삼고 싶으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셨으면).


우선 트렌드 파악을 하는 것이 기본 중에 기본이다. 우리 회사는 WGSN이라는 플랫폼을 이용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트렌드 조사 기관이다. 색은 물론이고(팬톤을 사용하지 않고 자사 컬러 회사인 컬러오(ColorO)를 쓴다), 소재, 장식품, 인테리어, 의류, 그래픽 등 어떤 것들이 트렌드인지 알려주는 기관이다. 구독료는 아주 비싸기로 소문나있다(정확한 가격은 모르지만 대략 1년 구독료가 $25K라고 알고 있다. 한화로 아마도 3000만 원?). 여기서 트렌드 조사를 하고 난 후에 무드보드와 컬러맵을 만든다. 그리고 그 무드보드와 트렌드에 맞게 디자인을 한다.


아이디어 회의를 통해서 어떤 디자인을 할지 대충 정한 후에 본격적으로 디자인을 시작하는데, 디자인을 할 때는 브랜드 콘셉트에 맞게(사실 아직도 이건 감이 안 온다. 디자이너 디렉터 스타일이기만 하면 되는 것 같다) 디자인을 하면 된다. 이때 일러스트와 포토샵을 사용한다.


그 후 디자인이 최종 결정이 나면, 디자인에 맞게 원단을 정하고, 각 디자인된 옷에 스타일 넘버를 만들어서 우리의 PLM 시스템에 업로드한다. 여기서 PLM이란 Product Lifecycle Management라고 BOM, POM부터 제조사에서 보내오는 샘플 사이즈 측정과 오차, 피드백, 그리고 테크니컬 팩까지 한꺼번에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우리 회사는 Backbone이라는 PLM 시스템을 이용하고 있다. 또한, 모든 Trim과 밀에서 보내주는 원단도 시스템에 입력하고 있다(BOM 만들 때 이용함).


우리 회사는 중국, 포르투갈, 터키, 파키스탄에 주로 밀(원단회사)과 매뉴팩처러(제조업체)를 두고 있기 때문에 이런 거래처들과 연락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종종 비디오콜로 같이 회의하기도 한다. 디자인이 끝나면 각 제조업체에게 테크니컬 팩을 보낸다. 그러면 그들이 이제 샘플을 만들어서 보내주는데, 1st/2nd/3rd... 샘플이 오고, 그 뒤로는 SSS, PPS, Photo Set Sample, Bulk 이 단계를 지난다. 그 뒤로는 다들 아시다시피 PO라고 Purchase Order를 하게 되면 대략적인 과정이 끝이 난다. 그럼 이제 배로 물건을 받을 건지, 항공편으로 받을지, 가격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여기까지 관여하지 않지만, 디자이너 디렉터인 A는 이 모든 걸 관리한다.


IMG_0833.jpg 열심히 샘플 Measure 하는 나


하지만 이 과정에서 Trim이라고 하는 것들도 들어가는데, 대표적으로는 지퍼, 단추, 시접 테이프, 행텍, 가먼트 백, 포장지, 포장 상자 등이 들어간다. 정확한 모든 과정을 말할 수는 없지만, 패션 디자이너라고 해서 정말 디자인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이런 모든 과정을 다 해야 하고 거래처와 연락하고 종종 시간 내에 끝내기 위해 밀어붙여야 할 일도 아주 많다. 아, 그리고 사진 촬영할 때도 참여해야 한다.


이렇게 한 시즌이 끝나면 밀에서도 새로운 원단을 보내주기도 하고, 제조업체에 방문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가까운 뉴욕에 출장을 가서 원단/데님 박람회에 참석해야 하는 일도 있다. 나는 아직 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까지 출장은 없었지만, 종종 뉴욕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한 번쯤은 뉴욕/터키/포르투갈 정도는 갔다 오지 않을까 싶다.


IMG_9762.HEIC 밀에서 보내주는 원단 스와치


글로 써놓고 보니 더 장황하고 복잡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대략이라도 이해를 하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신다면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저 모든 과정이 거쳐서 한 옷이 탄생한다. 그 옷에는 디자이너의 노력, 원단, 모든 트림, 그리고 운송비까지 다 들어가 있다.


학부생 때는 디자이너는 절대 하지 않겠다고 했었고, 나는 내가 재능이 없다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별거 없더라. 그래도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정말 재밌고 좋다. 내가 디자인한 것들이 샘플로 배송 올 때마다 설렌다. 이 정도면 나름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IMG_0040.JPG 내가 디자인한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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