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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똑같이 사람이더라

우리와 다를 바 없는 그들의 삶

by Sean

디자이너 디렉터로 일하고 있는 A, 브라질에서 온 나보다 한 살 많은 B. 그리고 나까지 이렇게 셋이서 디자인 팀을 이루고 있다. 포르투갈로 출장 및 여행을 간 A, 아파서 오늘 하루 집에서 근무하는 B 덕분에 오늘 하루는 혼자서 사무실을 지키고 있다. 눈치 보일 것도 없어서 대범하게 내 노트북을 들고 왔고, 짬짬이 글을 쓰는 것이 영어에 지친 내 머리를 식히게 해 준다.


누구는 글 쓰는 게 어렵다고들 하는데 영어만 써봐라. 한국말로 글 쓰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데. 더군다나 영타로 버벅거리다가 막힘없이 타자 치는 게 은근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오늘도 이렇게 작은 부분들에서 행복을 느끼면서 일을 할 수 있는 게 은근하게 뿌듯함을 주기도 한다.


앞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A는 필리핀과 독일 혼혈로 캐나다에서 태어난 캐네디언이다. 얌체 같은 면도 있고, 자기 과시하고 싶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본인이 만들어 놓은 자신의 커리어가 되게 뿌듯한 듯 보인다. 그래도 브랜드를 생각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배울 점은 많다. B는 브라질에서 혼자 캐나다로 유학온 후 나처럼 취업한 케이스다. 영어를 매우 잘하고 브라질에서 부족함 없이 큰 것 같다. 매우 신중한 편이고 내가 생각했던 브라질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다 깨준 부류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하고, 곧고 자기 할 말은 다 하지만 정작 속은 알 수가 없다. 남자친구랑 동거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여자 셋이서 일하다 보니 편한 점도 많고, 알게 모르게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면 A가 대부분 이기는 편. 우리 보스이기도 하고 나보다 10살은 더 많다. 그리고 아무래도 영어가 우리의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화나지만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꽤 있다. 지금은 남편과 꽤 풍족하게 사는 것 같은데(어렸을 때 자신이 가난하게 자랐다고 함) 자꾸 자신의 부(?)를 과시하는 대화를 이끌기도 한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대부분의 가구는 중고로 구매한 경우가 많다. 사실 테이블 하나 빼고는 모두 다 중고라고 보면 된다. 아, 매트리스도 빼고.


그러다가 소파가 너무 푹신하고 오래돼서 다른 소파로 바꿔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어디 가구가 좋은지 몰랐던 한낯 외국인인 나는 어느 하루 A한테 어느 가구가 좋은지 물어봤다.


"혹시 좋은 가구 판매하는 곳이 있으면 추천해 주겠니? 내가 소파를 바꿀 예정이어서."


"아, 나는 ㅇㅇ이랑, ㅇㅇ이랑, ㅇㅇ 가구 되게 좋아해. 엄청 팬시하고 비싸거든. 우리 집 가구는 다 그것만 써." (이런 부류의 대화를 좋아한다. 그거 진짜 비싼거야, 와 같은 말)


라는 대답에 바로 검색해 보니 무슨 소파들이 $4000- $6000 정도 하더라. 한화 약 400만 원짜리 소파는 내가 살 수도 없을뿐더러 이렇게 조그마한 집에 400만 원짜리 소파가 무슨 소용이겠나.


"알려줘서 고마운데 너무 비싸네."라고 대화를 마무리한 후 한 캐나다 브랜드에서 쉽게 조립할 수 있는 소파를 판매하고 있었기에 그걸로 결정하게 되었다.


A와 나의 단 둘의 미팅이 있을 때, 그녀는 슬며시 내가 소파를 샀는지 다시금 물어왔다.

"그래서 소파는 샀어? 어느 브랜드로 샀어?"

"나는 ㅇㅇ라고 캐나다 브랜드로 구매했어!"

"오 그래? 처음 듣는 브랜드네? 얼마 주고 구매했어?"


라고 묻기에 조금 당황했다. 그냥 여기 애들은 이런 게 실례가 아닌가? 내가 브랜드 얘기도 해줬으면 알아서 찾아봐도 되지 않나?라는 생각과 함께 가격을 알려줬다.


"우리 집 소파는 4k인데~(대충 400만 원 정도라는 뜻)"


라는 말에 잠깐 누가 머리를 때리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내 보스가 내 일에 대해 리뷰를 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에서 자기 소파가 얼만지 얘기하고 있다니.


"우리 집은 그렇게 큰 소파 필요 없어. 알다시피 작은 콘도잖아."

"근데 우리 집은 되게 큰 거 알지? 우리 집은 하우스잖아~"


라고 말하는 그녀의 말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얼버무렸다. 지금 나랑 경쟁하고 있는 건가?


평소에 자기가 콘도(렌트)에서 하우스를 구매해서 이사 갔다는 사실을 아주 많이 이야기하길래 자신과 남편이 스스로 이뤄놓은 성과가 정말 뿌듯한가 보다, 싶었다. 당연히 그럴 성 싶다 싶었다. 여기도 집 값이 저렴하지는 않으니 당연히 뿌듯할만하다, 어렵게 자랐다고 했는데 자기가 이만큼 이뤄낸 거면 정말 대단하다, 하는 생각이었는데.


저 대화 하나로 그녀의 삶을 잠깐 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면 너무 무례한 걸까? 살면서 타인에게 얼마나 인정받기 위해 노력해 왔을지, 스스로 남들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생각하니 짠했다. 물론 이 마음도 내가 넘겨짚은 거일 수 있지만.


A도 결국 똑같은 사람이구나. 똑같이 자신을 도마 위에 올려서 남들과 비교하고, 가끔은 질투에 눈이 멀어버릴 것 같은 강렬한 마음도 들고, 아닌 척하지만 저 사람이 어떤 옷을 입었고 어떤 가방을 들었는지 계속 확인하는 그런 부류의 사람. 돈을 원하는 게 아닌 척해도 욕망이 너무 커서 자기도 모르게 저 대화처럼 그냥 흘러나오는 그런 사람. 자기 스스로 자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그런 사람.


참, 사람사는거 다 똑같지.


IMG_0831.JPG 뜬금없지만 나의 새로운 중고(?)가구 홈오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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