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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11. 2024

나는 아빠가 상상했던 딸이었어?

난 내가 상상한 내 모습이 아니었는데

어디선가 글을 본 적이 있다. 현대인들의 나이는 자신의 실제 나이에서 곱하기 0.8을 해야 한다고. 요즘 사람들은 젊게 살고 오래 살기 때문에 실제 나이와 차이가 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사실이었으면 좋겠네). 만으로 28살이 되어가는 나는(8월에 생일), 진심으로 아직 22살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이렇다 할 업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모아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친구들처럼 시집을 가려고 준비하는 것도 아닌.. 그냥 나는 나일뿐이다. 나이를 먹는 건지도 모르겠고 그냥 하루 바빠 하루 살고 있는데 이러다 보니 이번 연도 8월 말이면 어느덧 28살이다.


아빠의 28살의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가난에 허덕이며 벗어나기 위해 노력을 하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그때는 삶이 조금 나아졌을까, 28살의 아빠는 8년 뒤 나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겠지만, 나로 인해, 우리로 인해 더욱더 책임감 있는 삶을 살아야 했겠지. 나는 과연 아빠가 상상했던 딸의 모습과 닮아있는지 궁금하다. 


부모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해서 이뤘다는 자식들, 어린 나이에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해서 한 자리에서 일류가 된 자식들, 모험심이 가득해 해외에서 유명하다는 회사에 입사한 자식들과는 다르게 나는 아빠가 원하던  꿈을 대신 이뤄주지도, 자리를 제대로 잡지도 못한 딸이다. 해외에서는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 백인들과의 영어가 두려운 겁쟁이 딸이라면 모를까. 겁이 많고 완벽주의가 강한 탓에 가끔은 더더욱 움츠러들 때가 있지만, 이것도 누구한테서 왔겠는가. 다 아빠 피지.


어디 내놔도 잘난 자식은 아니지만, 그 자리에 고여있지 않으려고 하고 늘 채찍질하며 발전하려고 고군분투하는 그런 딸이 될 수 있어서 기쁘다. 나의 인생이 어떻게 풀려나갈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아빠와 엄마가 내게 보여주었던 사랑과 헌신으로 인해서 힘든 일, 좌절스러운 일이 있어도 굳건히 지켜나갈 수 있다. 아빠가 나를 처음 품에 안았을 때, 그 감정은 어땠을지, 어떤 사람으로 커가기 바랐는지는 알 수 없어도 아픈 이야기에 함께 눈물 흘리고, 남들 고통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사람으로 컸다. 세상을 뒤바꿀만한 혁명가도, 큰 울림을 줄 수 있는 현자도 안 되겠지만, 그래도 이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의 몫을 해내고 나보다 조금 어려운 사람을 도울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다.


남에게 해 끼치는 걸 싫어하고, 싫은 소리는 잘 못하지만 그래도 내 밥그릇은 지킬 줄 아는, 가끔은 똑 부러진다, 야무지다 소리를 듣는 27.8세 어른이 된 나는, 아빠가 상상하던 그 딸의 모습이 맞는지 궁금하다. 아빠에게 자랑스러운 딸이 될 필요도, 아빠를 흐뭇하게 만들 의무도 내게는 없지만, 그래도 이왕 아빠 딸로 사는데 아빠의 마음을 조금 더 낫게 해주는 딸이 되고 싶다. 문제 일으켜서 속 썩이는 것보다는 함께 행복한 편이 좋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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