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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04. 2024

아빠의 삶은 어디쯤이야?

산을 오르는 것, 인생을 사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하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20대 후반으로, 삶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삶의 중턱쯤 와 있으려나? 그렇다면 나의 부모는 어디쯤일까? 하산하고 있나, 아니면 이제야 정상에 있나. 그들의 삶은, 또 나의 삶은, 그리고 나의 형제들의 삶은 인생의 산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빠는 내 나이 때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때도 여전히 가난했을까,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지금의 나처럼 아무것도 쌓아둔 것 없고 모아둔 것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까? 가끔은 세상에 지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디쯤에 있고 나는 20대 후반의 평균에 속한다.. 뭐 그러한 지표? 삶은 너무나 다양해서 평균을 낼 수 없겠지만, 이런 수치로 보고 싶은 게 또 사람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이별을 겪겠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가족들과의 이별이다. 아빠와, 엄마와 그리고 언니 나의 동생과의 이별. 내가 한국에서 캐나다로 오기로 했을 때도 이별이지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만나서 서로를 느끼고 대화하고 함께 무엇인가 할 수 있기에 그다지 슬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아프고 난 뒤부터는 아빠와 산을 함께 하산할 수 없다는 게, 이 모든 길을 홀로 가야 한다는 게 슬플 뿐이다. 삶은 지독하게 혼자라고 느낀 때부터 가족들이, 나의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삶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까? 후회하지 않게끔 그들과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까? 눈에 우리의 삶의 온도계가 보이더라도 우리는 또 후회하고 자책하고 마냥 옆에만 있어줄 수 없는 삶을 살 것 같다. 말했듯이 인간은, 한 사람의 인생은 지독히도 혼자이고, 각자만의 사정이 있기에..


캐나다에 있으니 아빠와의 관계가, 친구와의 관계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거라는 걸 안다. 나도 한국에서 엄마 아빠와 매일 보며 살면 이런 애틋한 마음은 1년에 몇 번 안 느껴질 것 같지만,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배우는 점, 느끼는 감정들이 많아지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산의 어디쯤에 있을까. 아빠와의 나와의 거리는 꽤나 큰 차이가 나겠지만, 너무 멀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 그 어디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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