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오르는 것, 인생을 사는 것도 그와 비슷하다.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하산해야 한다는 점에서. 나는 아직 20대 후반으로, 삶에 큰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삶의 중턱쯤 와 있으려나? 그렇다면 나의 부모는 어디쯤일까? 하산하고 있나, 아니면 이제야 정상에 있나. 그들의 삶은, 또 나의 삶은, 그리고 나의 형제들의 삶은 인생의 산에서 어디쯤에 있는지 문득 궁금해진다.
아빠는 내 나이 때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그때도 여전히 가난했을까, 어떤 꿈을 꾸면서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지금의 나처럼 아무것도 쌓아둔 것 없고 모아둔 것 없는 그런 삶을 살고 있었을까? 가끔은 세상에 지표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디쯤에 있고 나는 20대 후반의 평균에 속한다.. 뭐 그러한 지표? 삶은 너무나 다양해서 평균을 낼 수 없겠지만, 이런 수치로 보고 싶은 게 또 사람 마음이다.
살아가면서 많은 이별을 겪겠지만,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가족들과의 이별이다. 아빠와, 엄마와 그리고 언니 나의 동생과의 이별. 내가 한국에서 캐나다로 오기로 했을 때도 이별이지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자주는 아니더라도 만나서 서로를 느끼고 대화하고 함께 무엇인가 할 수 있기에 그다지 슬픈 마음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가 아프고 난 뒤부터는 아빠와 산을 함께 하산할 수 없다는 게, 이 모든 길을 홀로 가야 한다는 게 슬플 뿐이다. 삶은 지독하게 혼자라고 느낀 때부터 가족들이, 나의 친구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삶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된다면 사람들은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까? 후회하지 않게끔 그들과의 시간을 더 보낼 수 있을까? 눈에 우리의 삶의 온도계가 보이더라도 우리는 또 후회하고 자책하고 마냥 옆에만 있어줄 수 없는 삶을 살 것 같다. 말했듯이 인간은, 한 사람의 인생은 지독히도 혼자이고, 각자만의 사정이 있기에..
캐나다에 있으니 아빠와의 관계가, 친구와의 관계가 더 애틋하게 느껴지는 거라는 걸 안다. 나도 한국에서 엄마 아빠와 매일 보며 살면 이런 애틋한 마음은 1년에 몇 번 안 느껴질 것 같지만, 여기에 살고 있으면서 배우는 점, 느끼는 감정들이 많아지니 감사하게 생각한다. 우리의 삶은 산의 어디쯤에 있을까. 아빠와의 나와의 거리는 꽤나 큰 차이가 나겠지만, 너무 멀지만은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거리, 그 어디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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