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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May 29. 2024

아빠의 비타민 C

아빠가 정말 아프지 않으면 좋겠어

어느 순간부터 아빠는 비타민 씨를 먹으라고 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고용량으로. 알고 보니 심장에 이상을 느껴 방문했던 병원에서 협심증 진단을 받았고, 몸 변화에 예민한 아빠가 조금 이상하다 싶은 때 다녀와서 스탠트까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리고 협심증에 좋은 영양제를 찾아보던 와중 고용량 비타민 C를 알게 되었고 꾸준히 복용한 결과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심장 혈관 질환이고 한 번 나빠진 혈관이 좋아질리는 없으니, 계속해서 관리하고 조심해야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꾸준히 복용하고 운동도 해준다고 했다.


오랜만에 영상통화를 한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새 차 자랑도 하고 연봉 협상에 대한 이야기, 그런데도 내 눈에는 자꾸만 깊어진 아빠의 팔자주름, 저번보다 늘어난 거 같은 목주름, 그리고 탄력이 없어지고 있는 손등의 살갗이 보였다. 협심증 진단을 받고, 500미터도 채 걷지 못했었다고,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동시에 영주권이 언제 나오냐며 중국 출장을 가서 한국에 오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단순히 내가 보고 싶었나 보다~ 생각했는데, 협심증 진단을 받고 500미터도 걷기 힘들었던 아빠는 어쩌면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하루빨리 나를 더 보고 싶어서, 표현에 서투른 아빠가 “영주권은 언제 나와?”로 에둘러서 물어본 것 같아, 전화를 끊고 눈물이 났다.


그것도 모르는 철없는 둘째 딸은, 향수병이 오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한국 한 5년은 안 가도 거뜬하겠는데? 하는 말이나 내뱉고 다니다니. 아빠 없는 삶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제 아빠 없는 삶을 생각하게 되니 너무 두렵다. 영원할 것 같았던 지금의 삶도, 아빠의 건강도 어쩌면 희미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조금 벅차다. 그 마음이 나도 모르게 계속 깔려있었는지, 그저께 꿈에는 아빠가 돌아가시는 꿈을 꿨다. 갑자기 다가왔던 죽음이었던 만큼 꿈에서 목 놓아 울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아빠의 죽음이 두렵긴 했나 보다 싶다.

역시 비타민 C

평생 아빠가 나한테 직접적으로 예쁘다는 말을 한걸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어제는 아빠와 카톡을 하다 '예쁘네 아빠딸'이라는 아빠의 대답을 보고 눈물이 핑 돌았다. 아빠도 자신의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느껴지고, 죽음도 생각해 봤을 때 우리에게, 또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을까 싶다. 사람이 죽을 때 되면 바뀐다던데~라는 농담을 했던 적이 있는데, 혹여 아빠가 그런 거일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궁금하다.


아빠는 자식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서 건강하게 죽는 것이 가장 마지막 소원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자신의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우리에게 짐이 되는 것은 두렵다는 것이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다행히 비타민 C를 먹고 많이 나아졌다는 아빠는, 우리에게도 비타민 C 강의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왜 전화만 하면, 대화만 하면 비타민 C를 먹으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갔는데,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건강하게 살라는, 아빠가 아파보니 건강이 최고다,라는 아빠의 메시지이자 또 우리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아빠의 희생과 사랑이라는 것을.

부모란 뭘까? 도대체 그 사랑, 헌신과 깊이를 내가 알 길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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