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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May 21. 2024

아빠, 나는 책임감이 없는 사람일까?

나는 나 스스로도 너무 벅차

20살이 되었다고 해서,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해서 어른은 아니다. 어른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늘 원한다고 소리치고 싸우던 시절이 지나고 어느덧 20대 중반에 처음으로 캐나다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기는 했지만, 그 외의 모든 것을 내가 하기 시작하면서 덜컥 겁이 났던 기억이 난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서 살기 시작하면서 엄마 아빠가 짊어져왔던 삶의 무게에 대해서 더 생각하고 느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데, 아빠는 그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모르겠다. 얼렁뚱땅 시간이 지나니 살아진 것뿐일까, 아니면 대단한 책임감을 가지고 살아왔던 걸까.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을 시작하면서 일하기 싫었던 날도 있고, 책임지고 있는 일을 그냥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있다. 상사한테 억울하게 혼나기라도 하는 날은 우울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일을 해야 하나, 이 푼 돈을 벌자고 이런 소리까지 들으면서 일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물며 아빠 인생에는 그런 일들이 많았을까. 아빠랑 엄마는 비행기로 14시간이나 떨어져 있는 이곳 토론토에 혼자서 살아가고 있는 게 더 대단하고 대견하다고 하지만, 나는 우리를 여태껏 책임진 아빠의 어깨가 더 대단하다.


양 어깨에 엄마 그리고 우리 삼 남매 각 둘 씩 매달고 쉬고 싶을 때 쉬지도 못하고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다녔어야 할 아빠는 얼마나 도망가고 싶은 날이 많았을까. 삶이 지긋지긋해서 그냥 숨어버리고 싶었던 날들에도 어린 우리들이 눈에 밟혀 애써 웃는 얼굴로 세상에 나가야 했던 아빠를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렇게 넓어 보였던 아빠 어깨가 작아지고, 욕심 많고 이루고 싶었던 게 많은 아빠가 이제는 그런 욕심이 없어졌다고 말을 하는 걸 보면 시간이 많이 흐르기는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든다. 아빠가 늙어가는 걸 보는 게 자식 입장에서 참 속상하고 슬픈 일이다. 


나는 도망가고 싶은 때가 있으면 아빠라는 그늘 아래로 도망가서 잠시 쉴 수라도 있을 텐데, 아빠의 그늘은 무엇이었을까, 어떻게 그렇게 묵묵하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나는 책임감이 너무 없는 사람인 것 같다. 나는 나만의 인생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결혼은 물론 강아지 기르는 것도 생각할 수가 없는데, 아빠는 우리 집 네 식구를 모두 다 책임지고 있으니 그 마음이 어땠을까. 보내고 싶지 않았던 수많은 밤이 아빠에게 얼마나 많았을지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 나는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은데 어른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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