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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n 18. 2024

무섭던 아빠가 귀여워 보인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거겠지?

아빠는 지금 생각해 보면 불안이 아주 높았던 사람인 것 같다. 통제하는 게 많고 아빠가 하지 말라는 건 하지 말아야 하는, 우리는 엄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는데, 그게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 본인이 불안이 높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신의 불안감을 표출했던 것 같다. 하지 말라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하고 아빠가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은 어떻게 해서든 통제하고 싶어 했던 아빠는(그걸 내가 꼭 빼닮았다), 어릴 땐 정말 무서웠다.


요즘은 체벌에 대한, 훈육에 대한 기준이 많이 달라져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초등학생 때, 중학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장구체로 맞고 책상 위에 무릎 꿇고 올라가서 손 들고, 부모한테도 맞는 경우도 많았다. 우리 아빠도 훈육을 매로 하기는 했지만, 내가 초경이 시작되고 난 무렵 이후에는 매를 들지 않았었다.


하지만 아빠가 얼마나 불안감이 높은 사람이었냐면 내가 15살이 되던 해, 수학 학원에 들러서 놓고 온 교재를 들고 오겠다고 하고 나간 후 교재를 들고 집으로 가는 중 친구와 통화가 길어졌다. 그때는 1541 콜렉트콜 이런 게 있어서 그 번호로 전화를 계속하고 있었는데, 집 앞 수학학원에 간다는 딸내미가 1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계속해서 전화를 걸던 아빠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자 불안과 분노가 동시에 일었다. 집으로 가니 누구랑 그렇게 통화를 해대냐며 통화 목록을 보자던 아빠는 1541010~으로 시작한 번호를 보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며 내 따귀를 때렸다. "이런 개새끼가"라는 말과 함께.


여기만 들으면 폭력적인 아빠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 아빠는 무뚝뚝하지만 자식 사랑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다. 지금 생각하면 자신의 불안을 자신도 어떻게 해결할 줄 모르는 어른 아이로만 보인다. 친구와 콜렉트 콜로 전화한 거라고 얘기해주고 싶었고, 아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맞은 따귀는 오랫동안 내 가슴에 상처로 남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도 어른이 되면서 아빠를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아직도 그 흉터는 있는 것 같지만.


모든 자식이 나처럼 용서하고 이해하고 넘어가는 건 아니다. 우리 언니는 아직까지 아빠의 강압적인 태도를 무서워하니까. 어릴 때 박힌 아빠의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인 태도는 아빠에 대한 선입견을 만들고 언니의 사생활을 아예 공유하지 않게 되었다. 몸만 같이 살뿐, 언니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꿈을 꾸고 사는지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숨기는 게 많아지고 숨죽이고 말하지 않는 것들이 많아지기도 한다.


아빠는 내 따귀를 때린 걸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내게 짙은 상처를 남겼었고, 지금은 그 흔적만 있을 뿐 나도 아무렇지도 않다. 아빠를 닮아 높은 불안도에 가끔 나도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빠는 상처를 남긴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남긴 건 아닐까, 하는 씁쓸한 웃음이 나기도 한다. 아빠의 높은 불안은 내게도 높은 불안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아빠의 행동들이 무섭기보다는 귀여워질 때가 많다. 이제는 아빠가 무섭지 않다는 게, 아빠를 보며 짠하고 울컥하는 마음이 든다는 게 어찌 보면 슬프기도 하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어릴 때 어른들이 말하던 "나이 먹으면 다 알아"하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서 마음이 이상하다.


그래도 아빠가 무섭지 않고 귀여우니 이제는 더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든다. 누구 하나 부모에게 상처 안 받은 사람도 없을 거고, 나도 그중 하나일 뿐이다. 그들도 최선을 다했을 거고 사람이고 인간이었기에.. 가끔은 부모도 부모라는 타이틀을 벗고 싶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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