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함께한 시간들이 주르륵... 지나간다
근무 중 확인한 메일 하나. 캐나다 정부에서 온 '너의 애플리케이션에 대해 새로운 메시지가 있다'라는 소식이었다. 얼마 전 지문 등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 난 뒤로 크게 감흥이 없던 나는 그냥 또 별거 아니겠지 싶었다. 순서도 뭐가 뭔지 뒤죽박죽이고 누구는 뭐가 먼저 나왔네 아니네 하는 캐나다 영주권이라 별 기대 없이 들어갔다.
'Invitation to pre-arrival'이라는 문구를 보았고, 이 레터가 오면 심사가 대부분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들었다. 잘되고 있나 보다, 와 동시에 생각보다 너무 빨라서 어쩌면 중국 출장을 쫓아가야 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사실 10월 전에 나와도 중국 출장은 안 갈 예정임ㅋ 안나왔다고 거짓말하면 그들은 알 길이 없기 때문.
아무튼, 미리 준비했던 나의 영주권, 우리가 함께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어쩌면 의도적으로 우리가 함께 살고 있다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었는데 곧 끝이 날 것 같다는 생각에 뭔가 마음이 이상하다. 사실 나에게 달라질 건 없지만, 영주권이 주는 의미가 조금 더 크게 다가온달까?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일주일에 한 번씩 상사를 만나며, 일주일에 한 번씩 팀 미팅을 하면서 나에게 말을 걸진 않을까 조바심을 낼 거고, 비싼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할텐데, 그깟 카드 하나가 뭐라고 마음이 이렇게 몽글몽글해지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높아져만 가는 영주권 점수를 보고 속내를 이야기하니 그렇다면 자신이 후원자가 되어주겠다고 선뜻 나서던 그의 모습, '커먼로'라는 이민 방법이 나의 일은 아닐 거라고 귓등으로만 들었던 2년 전의 나의 모습, 한국을 떠날 때 아빠의 모습과 나를 배웅해 주러 나온 가족들의 모습까지 뭔가 한 번에 스쳐 지나갔다. 캐나다 정부에서 날아온 저 'pre-arrival letter' 한 장으로. 레터를 열어보면 별 말도 없는데, 나는 여기 와서 고생하고 살았던 것도 아닌데 캐나다에서 지낸 3년(4년 차)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텅 빈 공항을 뒤로하고, 걱정에 가득 차서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배웅하던 아빠를 뒤로하고 왔던 캐나다. 오직 내가 해보고 싶었던, 살아보고 싶었던 삶을 살기 위해 왔던 곳인데 뭔가 여기에 '영구히 살 수 있는 자격(까진 아니고 5년에 한 번씩 갱신해야 함)'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 그지없었던 외국인 신분에서 조금은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별 고생 안 하고 살았던 나도 이렇게 마음이 조금 이상한데, 온 고생을 하면서 얻게 된 영주권은 얼마나 달콤할지. 아, 그래도 천천히 나와라~ 11월쯤에~ 아님 아예 일찍 나와서 8월에 나를 보러 밴쿠버까지 오는 친구들과 미국 여행까지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