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사업은 쉽지 않다
나는 한국에서도 의류학을 전공했고, 캐나다에서도 패션을 전공했다. 지금 하는 일도 패션 디자이너고 전공을 살려 프리랜서로 네덜란드에 있는 브랜드와도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무엇을 잘하고 꾸준히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단연 '패션'이었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아가고, 특히 화려한 연예인들과 일하는 친구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나의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항상 막연하게나마 있었다. 이번 8월 한국에서 친구들이 나를 만나러 왔고, 그때 자기 브랜드를 운영하고 있는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나에게 자리 잡고 시작하려고 하기보다 일단 저지르고 보라고 조언해 준 친구 덕분에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래, 나는 디자인을 할 수 있고 매일 작성하는 게 작업지시서고, 다양한 원단도 알고 브랜드의 로고, 엠블럼 심지어 패턴까지 만들 수 있는데 나라고 못할 게 뭐야?'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 번 알아봐야겠다 마음을 먹으면 불도저 같은 성격에 그날 바로 한국에 있는 공장에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캐나다에 있기에 물리적 거리가 있어 직접 원단을 보고 부자재를 고르지 못한다는 큰 핸디캡 때문에 프로모션 회사에 연락을 하게 되었다. 아쉬웠다. 디자인도 하고 작업지시서도 만들 수 있는 난데, 캐나다에 있다는 이유로 프로모션 회사를 써야 한다는 게. 그래도 디자인부터 패키징까지 해주는 게 얼마나 편한 일이야, 하며 연락을 했고 중국 공장 핸들링에 익숙해져 있던 나는 한국의 높은 단가에 충격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소량 제작'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연락을 했던 4-5군데의 공장에서는 내 기준 '소량 제작'이 아니었고, 중국 공장과 다른 시스템, 한국에서 실무를 하지 않고 바로 유학을 왔던 나는 한국 실무 용어를 알 길이 없었다. 직접 브랜드를 만들어낸 친구 얘기를 들어보면 최소 20장도 해봤다고 하던데, 프로모션 회사 입장에서 20장은 말도 안 되는 적은 수량이었다. 여러 군데와 이야기를 해봤던 나는 한국에서의 의류 제작은 포기하고 중국 공장을 알아보기로 했다.
최소 수량이 없다는 중국 공장, 메일로 문의하니 바로 나의 상담 담당자가 정해졌다. Whatsapp으로 연락을 하라는 메일을 받고 바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고, 60장만 주문해도 사이즈 3개로 나눌 수 있냐고 묻는 나의 말에 그렇다고 답이 왔다. 그래, 그럼 그렇지 내가 아는 중국 공장은 이래야지!라는 마음과 함께 내가 맡기고 싶은 디자인을 보내주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샘플 비용을 포함한 공장 정책을 링크로 보내주었다. 설레는 마음에 열어보니 쓰여있는 숫자 $460. 뭐어라고?
미국 달러라는 그들의 말에, 한화 63만 원이라는 사실에 너무 놀라 내 상담 담당이었던 그녀에게 이 가격에는 샘플을 못 보겠다고 했다. 복잡한 구조도 아니고 후드티와 츄리닝 바지였는데 63만 원을 요구하는 건 아니라고 봤다. 내가 핸들링하고 있는 공장들한테서 받아본 적 없는 가격이었다.
"Sorry, I don't think I can proceed with this price"라고 보내니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녀에게서 타깃으로 하고 있는 가격이 있냐고 답이 왔다. 뭐어라고? 샘플 가격에 타깃이 어딨어? 발주하는 본품 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샘플 가격을 네고한다고? 그런 그녀에게 구조가 복잡한 백팩도 $200을 내고, 한국도 이 가격으로 안 받는다고, 구조가 이렇게 심플한 후드티와 츄리닝을 두고 63만 원을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아, 진짜 믿었던 중국 공장이 내 뒤를 이렇게 때려버리냐.
자기들은 디자인, 작업지시서, 패턴, 원단 소싱, 봉제 그리고 배송비까지 포함된 가격이라고 강조하던 그녀. 그래, 알겠는데 그거 다 포함해도 한국에서 하는 게 더 싸다 이 말이야.. 난 이 가격으로 샘플 절대 못 보겠다고 했더니 바로 그럼 알겠어! 하고 우리의 짧은 대화는 끝이 났다. 다른 공장들도 알아봐야겠다 생각했던 나지만 벌써 의욕이 꺾어버렸다.
중국에서 미국까지 배송비만 6000만 원을 지불하던 클라이언트가, 하루에 1000장의 옷을 틱톡에서 팔아버리는 또 다른 클라이언트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아, 미주에서의 의류 사업이라는 건 그런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것이구나, 하는 씁쓸함과 함께 자본주의의 잔인한 공평성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잘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정말 다른 일이고, 나는 디자인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지 그 디자인으로 의류 브랜드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막연하게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생각이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그래, 언젠가 나도 자본력을 갖추게 되면 할 수 있는 날이 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속에 뿌옇게 막연하게 둥둥 떠다니던 생각이 정리되었다.
알아봤으니까 됐어, 행동해 봤으니 됐어. 의류 사업은 한국에서부터나 시작해 볼걸 그랬네 하는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래도 중국 공장 여러 군데에 또 연락해 봐야지. 이렇게 계속 시도하다 보면 뭐라도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오겠거니,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