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이 영원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몸으로 변화되는 것들을 직접 마주하고, 내 친구들의 '상태'가 달라지기 시작하면서 나이를 먹고 있다고 느낀다. 정신은 아직도 10대 같은데 내 몸은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다. 20대 후반에 이런 이야기를 하면 엄마는 비웃고는 하지만, 확실히 다르다. 학생일 때는 이 공부, 학원 지옥에서만 벗어나면 행복할 거라 믿었고, 대학생 때는 꽤나 행복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친구들과 어울리고 해외여행을 다니며 내 삶은 이렇게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다. 12년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만 가면 모든 게 다 행복할 것 같았던 그때, 졸업 후 취업은 남 얘기로만 들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졸업 후의 일을 뭉그러뜨린다. 졸업하고 일하고 결혼하고 그렇게 사는 거지~와 같은 말로. 20대 후반이 되니 친구들이 하나 둘 시집/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고 누구는 몇 년 차 직장인, 누구는 누군가의 엄마로, 아빠로 삶을 사는 걸 보면서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든다. 나는 아직도 어린것 같은데, 나이를 먹는다는 게 이런 건가, 싶다. 아빠도 엄마도 '내가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는지 모르겠다'라고 했을 땐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나도 어느덧 20대 후반이 되고, 곧 있으면 서른이다. 고등학생 시절이 10년 전이 되어버렸고 그 안에 많은 걸 느끼고 배웠지만 지금의 삶을 살아가면서 자꾸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50대, 60대 어른들을 바라봤을 때, 그들도 나처럼 느낄까 궁금하다. 그들도 정신은 아직 20대, 30대인 것 같이 느껴지려나. 아빠도 자기가 아직도 40대 같은데 언제 60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나이 먹기가 싫은데 이제 이 나이가 되니 사회가 원하는 나의 모습도 있고 친구들도 하나둘씩 시집을 간다. 삶이 혼란스럽고 혼돈스러운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내 친구들 또한 '왜 이제 와서야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다들 대학 졸업 후의 모습이 이렇게 혼란스럽고 붕 떠버린 것 같은 거라고 아무도 말을 안 해줬는지 모르겠다.
내가 맞는 길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하루를 살아야 하는지, 여기서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스킬을 가져야 하는지 따위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수동적으로 살고 싶지 않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일을 하고, 일이 끝나면 블로그를 하거나 운동을 하거나 그냥 쉬거나. 그리고 다시 잠들어서 일어나서 일을 하고.. 그런 하루를 주중 내내 반복하다가 주말이 되면 행복하다.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과 함께 주중에 일했던 나 자신을 쉬게 하고 싶은 보상심리까지. 그러다 보면 짧은 주말 이틀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또다시 똑같은 주중이 반복된다. 이런 삶을 30년은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끔찍해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을 더 발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또 배달 음식이 오면 금방 까먹어버리는 나. 다들 이렇게 살아가는 거라고 위로해 주지만 나는 이런 내가 싫다.
더 배우고 싶은데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모르겠고, 더 발전하고 싶은데 '어떻게'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다들 내 만족이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데 무엇이 '내가 하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틀에 갇힌 교육을 받고 약간의 해방감과 경험을 쌓고 남들 하는 대로 취업했더니 이제는 또 발전하고 싶다고 혼란스러워하는 나 자신이 웃기다. 어떤 삶을 살고 싶은 건지,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알고 싶은 나는 제2의 사춘기다. 누군가 가이드라인을 주면 '틀대로 갇혀 살기 싫어!'라고 반항하고, 이렇게 자유로우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말하는 내가 참 이중적으로 느껴지는 오늘.
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