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나눈 대화에 매일 아침마다 "아 퇴사하고 싶다" "아 일하기 싫다"라고 말하는 게 부지기수이다. 정리해고를 겪고 난 뒤로부터는 회사 없이도 나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는데, 한국에 있는 몇몇 나의 친구들과도 얘기하면서 느끼지만 아직 현실적으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런지 그 누구도 제대로 준비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다, 나를 포함해서.
사실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은 이루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또 혹은 하고 있는데 성과가 나지 않아서 점점 지쳐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이건 아마 나일지도?). 나만 해도 네이버 블로그, 유튜브 그리고 브런치, 또 프리랜싱 디자인, 한 달에 한 번 쓰는 여행 작가 원고까지 5개의 다른 부업(?)을 하고 있지만, 사실 이렇다 할 성과는 나지 않는다(기준이 다를 거라고 생각한다. 최대 한 달 120만 원까지 벌어봤지만 효율은 글쎄).
부업으로 100만 원을 넘게 벌면 성공일 거라고 생각했고, 다양한 루트를 만들어두면 월급 외 수익으로도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던 지난날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부업으로 100만 원'도 만들어보았지만, 내게는 만족스러운 성과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진심으로' 회사 없이도 먹고사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급 이렇게 느끼기 시작했던 것은, 상사가 장기 중국 출장을 가게 된 이번 달 1일부터였던 것 같다. 그녀가 없으니 할 일이 뚝 끊겼고(많은 일을 주고 갔지만 한 달 내내 할 수 있는 양은 아니었다. 한국인 특성상 또 빨리빨리 일을 끝내버린 나도 문제였지만), 매일 대화를 한다고 하지만 그녀와의 시차, 그리고 중국에서 너무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그녀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보였다. 그녀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더불어 시키는 일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나 자신이 과연 이 회사에서 안전할 수 있을까 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또한, 이 회사에 나 하나 없어도 잘 굴러갈 거라는 생각과 나는 나만의 특색이 없는 것 같은.. 소위 말해 그냥 '잡 것'을 처리하는 깍두기인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원어민들 사이에서 그냥 '샤이한 동양인'으로 보이는 것도 싫었고, 회사 사람들의 반 이상은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본 적 없는 '버츄얼 코워커'들이었다. 상사가 나를 대할 때의 태도와 미국에 있는 사람들을 대할 때의 태도도 달랐다. 나한테는 그렇게 mean 하게 굴고 작은 것 하나 꼬투리를 잡아서 '잡도리'를 하더니, 내 앞에선 그들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고 대답은 'Okay, thank you!'라고 쿨한 척 문자를 보내며 그들을 내게 씹는 그녀의 태도에도 기분이 상했다. 나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영어가 그들의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은근한 '언어차별'을 받고 있다는 걸 직접 눈으로 마주한 순간이었다.
'규범적 사회 영향'
한 개인이 공개적으로는 무리의 관점을 수용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에 동조하지 않는 순응의 한 형태.
나는 그들과 적극적으로 섞이고 싶어 하지 않았고, 팀으로서, 회사의 일원으로서 좋은 일이 생기면 좋지만 대단히 뿌듯하거나 함께 성장한다는 느낌이 아닌 그냥 나와는 먼 얘기라고만 느껴지는 요즘, '규범적 사회 영향'이라는 단어를 보고 이게 나의 모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양한 삶의 형태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만나 일을 함께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들을 만들어 내며, 중국에 있는 공장 사람들과 일을 하는 것은 좋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 자체의 일은 정말 좋지만, 상사가 나와 '영어 원어민'을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는 것, 그리고 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대체제라는 사실을 마주하고 난 후부터는 회사가 없이도 살아가야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되었다. 정년도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이 불안하고 아슬한 시대에, 나는 무엇을 하며 나의 가치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깊어진다.
언제까지나 젊을 수 없기에 도전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조바심이 나지만, 최소한 회사라는 울타리가 있을 때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해보고 꼭 내가 만족할 만한 성과를 꾸준히 내어 울타리 밖으로 나가고 싶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90년대생이고 만으로 20대 중후반이라면 더더욱 공감할 거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어리다고 말하기도, 나이를 먹었다고 하기에 애매한 우리의 나이에 나는 어떤 태도로 이 삶을 이끌어나가고 책임져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진다.
내가 정의하는 삶의 성공이 무엇인지도 희미해지고 있고 나의 삶의 모습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기대가 되면서도 걱정이 동시에 되는.. 참 재밌고도 어려운 날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