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끼는 마음은 다 맞아
캐나다에 오게 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그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히 같은 유학생이다.
사람들은 참 다양하고, 자라온 환경과 배경이 정말 다 다르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다.
어릴 때부터 나는 샘이 많고 질투가 많았다.
둘째이기 때문이었을까, 무엇이든지 다 잘 해내고 싶었고, 엄마 아빠의 사랑을 혼자서 다 받고 싶었다.
하지만 샘을 부리면 안 되고, 그것은 나쁘다고 배웠다.
크면서도 질투심, 불안한 마음은 모두가 다 나쁘다고 했다.
그래서 그 마음들을 숨겨야 했고, 그런 마음을 느끼는 내가 너무 싫었다.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드는 마음들이라고 손가락질받았다. 그래서 숨겨야 했고, 그 마음은 숨길수록 더 커지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적으로 왜 질투와 불안함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나는 이 마음으로 꽤 최근까지도 괴로워했다.
아마 한 번도 그 마음을 느끼는 나 자체를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나 자신까지도 내 마음을 받아들여준 적이 없으니, 당연히 그 마음을 가지는 것 자체가 괴로웠을 것이다.
우리는 질투를 느껴도 괜찮다. 불안해도 괜찮다. 사람이라면 다 느끼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여기 와서 한 친구를 만났다.
보기에는 무엇하나 아쉬운 게 없고, 꽤 풍족하고 잘 살고 있는 듯한 친구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 친구가 나의 뒷 이야기를 하고 다녔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겉모습으로 사람들을 평가하고, 겉으로 꾸며진 모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 친구를 보게 되었다.
물질적인 것이 중요하고, 타인이 어떤 가방을 메는지, 어떤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따지고 있는 그 친구를 보면서 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그 친구를 알고 나니, 실제로는 자기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서라는 것을 알게 됐다.
상대적으로 날씬한 몸을 가진 나를 부러워하고, 또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만을 이곳에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인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나의 영어 실력을 부러워하고, 혼자서 살고 있는 나, 등을 비롯해 자기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부러워하기에 뒷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왜 그런 부러움과 질투를 느끼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남을 욕하고 깎아내리는 방법을 선택했을까?
나는 키가 작다. 그리고 다리가 짧고 허리가 길다.
영어? 내가 원하는 만큼 못한다. 자유자재로 읽고 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항상 너는 날씬하잖아, 너만큼 영어 해도 소원이 없겠다, 라는 말을 많이 했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그 친구의 끊임없는 비교를 통해 스스로는 더 작아지고, 그렇기에 물질적인 것들로 자신을 가꿀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부러움, 불안함, 질투는 언제나, 누구나 다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이다.
우울하고, 기쁘고, 그리고 화가 나는 감정을 느끼듯이, 저 감정들도 모두 다 똑같이 느낀다.
하지만 왜 우리는 특히 질투와 불안한 마음에 더 예민하고 민감하게 굴며, 사회적으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마음을 다루는 방법을 더욱더 잘 알 필요가 있다.
자기 스스로가 먼저 내가 느끼고 있는 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주다 보면,
그 마음에 조금 더 관대해지면, 확실히 마음이 더 편안해진다.
"나는 지금 질투를 느끼는구나, 나는 지금 저 사람이 부럽구나, 그래 그렇게 느낄 수 있어."라는 마음으로 먼저 시작해보는 건 어떨까?
그리고 자신이 질투를 느끼는 부분을 잘 살펴보게 되면, 나중에 그 마음이 자기가 가장 원했던 목표라는 것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보자면, 나는 항상 학벌이 좋은 사람들을 질투하고는 했다.
그 마음을 보면, 나는 좋은 학벌을 가지지 못했고, 그 학벌을 늘 가지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예에서는 "좋은 학벌"이 나에게 목표였고, 내적 결핍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질투나 시기심을 잘 살펴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내면의 결핍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생긴다.
언젠가 '질투의 민낯'이라는 책을 읽게 되었다. 지그리트 엥겔브레히트가 쓴 책이다.
그가 말하길, 질투는 3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한다.
1. 후퇴적 질투 - 체념적인 반응 (예: 나는 절대로 저렇게 될 수 없어)
2. 적대적 질투 - 적대적인 반응,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장점 공격 (그 친구가 가지고 있는 질투 유형이라고 할 수 있다)
3. 선망적 질투 - 질투의 긍정적인 특성을 지님 (예: 저 사람이 나보다 영어를 잘해서 나는 질투심이 들어, 하지만 저렇게 되기까지 많은 노력이 필요했겠지? 그러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여기서 선망적인 질투만이 나를 성장시킬 수 있고,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을 축하해줄 수 있게 된다.
질투심과 불안함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모두 옳다.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고, 죄책감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 마음을 느낀다고 해서 남들이 뭐라고 할 것이라고 두려워하기보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만 자기를 받아들일 수 있고, 그 마음을 인정해야 지혜로워질 수 있다.
한 번 인정해보자. 그리고 그 질투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지 생각해보자.
나도 모르는 내면의 결핍이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서 내가 지금 무얼 할 수 있는지 한 번 더 고민해보자.
남들의 성공이 부럽다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냉정한 시선으로 보자.
하지만 당신이 느끼는 감정은, 마음은 다 옳다.
그 마음을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우울해하면서? 뒤에서 남 욕을 하면서?
아니면 그 마음을 동기부여로 사용하여 더 발전하고 성공하면서?
선택은 각자 자신에게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