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자체여도 괜찮아
고등학교 575명 중 80등, 국영수 모의고사 평균 3등급, 약 60~70위 사이의 4년제 대학교, 토익 800점대, 아이엘츠 overall band 6, 영어 B2 레벨.
본인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평범하고, 또 항상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늘 최고가 되고 싶었고, 그 마음은 나를 힘들게 했다. 항상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가득했고, 그 마음 때문에 늘 사람들의 반응이, 사람들의 마음이, 내 마음보다 더 중요했다. 나랑 친해지기? 나를 찾아가는 시간? 그거 꽤 어려운 거더라. 나를 찾는 시간이 이렇게 어려운 줄 알았으면 누가 먼저 말 좀 해주지. 이렇게 나를 오랜 시간 힘들게 했을걸 알고 다시 그 시간으로 간다면, 조금 더 현명한 시간을 보냈을 텐데.
사람이라면, 살아가면서 한 번쯤은 최고가 되는 상상을 한다. 근데 그래서 그 최고라는 게 뭔데? 1등? 과수석? 토익 만점? 아니면 토플 만점? 그것도 아니라면 세계 1위 대학교 졸업? 그럼 그다음은? 세계 1위 기업 입사? 그래서 세계 1위 기업이 어딘데?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그러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세계 1위의 남자와의 결혼? 그 남자는 누가 정하는데? 어디에 살고 어디에 있는데? 대체 뭐가 최고인 건데.
왜 나는 이렇게 무던히도 최고가 되고 싶었을까.
나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아빠, 칭찬보다는 꼬집는 게 익숙했던 아빠, 표현이 서툴어 다르게 표현하는 아빠, 자식 일이라면 물 불 안 가리는 희생하는 아빠, 하지만 불 같고 권위적인 아빠. 그런 아빠의 눈치를 보는 엄마. 예민하지 못하고 조금은 둔한, 혹은 쿨한 엄마.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고 감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엄마, 제각각의 모양을 하고 있던 울타리 안에 살고 있던 예민하고 까탈스러운 나.
10개 중 9개를 잘해도 1개를 못하면 꾸짖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약간의 강박, 그리고 스스로에 대한 높은 기대가 나를 점점 괴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았다. 나는 늘 중간, 혹은 중간 이상은 해냈으니까. 노력하지 않는 내 모습에 실망하고, 괴로워하고, 또 걱정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최고와의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최고를 바라는 사람이었지만, 그 안에서 최선은 빠졌다.
당연한 결과로, 나는 최고가 될 수 없었다.
왜 최고라는 타이틀로 나를 만들어야만 했을까.
우리는 성과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 성과로 자신의 자존감을 쌓아가고 있다. 자신이 이룬 성과는 결코 자기 자신이 될 수 없으며, 그렇게 쌓아둔 본인의 자존감은 금방 우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다. 몰랐다. 그런 자존감은 금방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걔는 어느 대학 다닌다며?"
"걔네 집은 금수저라며?"
"걔는 이번에 어느 기업 들어갔다며?"
이런 말들에 동요되기도 수천 번,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났다. 그들이 열심히 해서 만들어 낸 결과가 아니라,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그들의 성과를 깎아내렸다. 사실은 내가 못난 거였는데.
내가 못났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남을 깎아내리는 게 더 쉽다. 사람은 쉬운 걸 선택한다 예외 없이.
근데 있지, 나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이제는 알아. 최고가 아니어도, 우리는 그냥 우리 자체로 살면 된다는 걸. 각자 처해진 환경이 다르고, 뿌리내릴 수 있는 공간이 다른데, 어떻게 다 획일적으로 똑같은 타이틀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그렇게, 그렇게 살면 된다. 최대한 단순하게.
자신의 성과에 집중하는 자존감보다는, '나'로 쌓아가는 자존감. 내가 무얼 좋아하고, 어떤 걸 할 때 행복하고. 그렇게 자기랑 친해지면서 느끼는 것들로 쌓아가면 된다. 나는 예뻐, 나는 멋져 이런 자존감 말고.
글을 쓰면 마음이 참 후련하다. 마치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고, 대단한 발견을 해낸 것 같은 기분이 든달까? 최고가 되고 싶었다고 고해성사하고 있는 나는, 알고 보면 아직도 최고가 되고 싶은 걸까? 모르겠다. 그냥 이것도 난데 뭐 어때. 최대한 단순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