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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an Jul 09. 2022

그래도 마음이 크는 게 느껴져

내 마음 크기만은 Medium 사이즈가 아니야

    사람은 살면서 한 번쯤 이별을 겪는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최초의 이별은 '죽음'. 바로 할머니와의 이별이다. 7살,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 나를 떠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그 이별이 죽음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20여 년이 지나 할머니 얼굴도, 모습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목소리만은 영원히 기억하고 싶었는데.


    그리고 내 마음이 한층 커졌던 때, 바로 오랜 남자 친구와의 이별. 18살 때부터 만나 23살에 헤어진 나의 첫사랑이자 열병 같았던 존재. 아직도 종종 기억을 꺼내는 걸 보니 오은영 박사님 말이 맞나 보다. "헤어짐의 방식이 맞지 않으면, 그 사람 SNS를 보게 된다."라는 말. SNS를 찾아보진 않지만, 하고 싶은 말이 남고, 이렇게 글로도 쓰고 있는 걸 보니 퍽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그래도 덕분에 내 마음은 내 키보다 훨씬 커져있더라.


    둘째 콤플렉스로 가득 찼던 나의 10대 후반, 언니와 남동생만큼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했고, 나는 늘 내가 알아서 잘하고 컸다는, 자만심 가득한 생각으로 살아가던 때 그를 만났다. 둘째 콤플렉스를 단숨에 잊어버리고 부모도 어쩔 수 없었구나, 그들도 내 부모이기 전에 사람이었지, 하는 마음이 들게 할 만큼 그는 나를 사랑했다. 생전 처음으로 받아보는 낯설지만 기분 좋은 사랑의 방식과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아빠와는 달리,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해주는 그와의 연애는 나를 키웠다. 그렇게 나는 한 뼘씩 자라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 때만 할 수 있었던 사랑, 그들만의 풋풋한 사랑을 할 수 있었기에 그 시간이 소중하다.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그와 헤어졌기에 지금의 훌륭한 남자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서툴지만 풋풋하고, 풋풋하지만 힘들었던 그 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 다들 뭐 이런 사랑 한 번쯤은 하잖아요?


    시간이 흘러 우리는 대학에 갔고, 늘 마음에 들지 않던 그의 새로운 여사친. 여자의 촉은 참으로 신기해. 그렇게 군대를 가고, 전역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부터 변해가던 그는 마지막까지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도 하지 못하는 비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만 끝내면 되는 관계라면 네가 네 입으로 말해."


    라는 나의 말에 돌아온 그의 대답,


    "미안해"


    페이스북 메시지로 헤어지자는 이야기도 하지 못했던 겁쟁이. 나는 그런 겁쟁이를 5년 동안 후회 없이 사랑했다. 하지만 다 타버리고 남은 재에도 온기는 남아있다. 그 재의 양이 많을수록, 그 온기는 오래간다. 그래서 나는 꽤 오랜 시간 마음껏 아팠다. 그 무렵 들려왔던 마음에 들지 않던 그 여사친과의 그의 연애 소식. 사람은 왜 아파야만 성장할까? 갓 태어난 아가들도 한 번씩 아프면 훌쩍 커있다고 하던데, 내 마음도 그랬다.


    죽일 듯이 미워하고, 어떻게 하면 복수할 수 있을까 이를 바득바득 갈던 이틀. 사람 미워하는 마음 가지는 것도 참 쉽지 않더라. 그리고 미워하기엔 사랑했던 시간들이 떠올라 나를 붙잡았고,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기엔 헤어짐의 방식을 탓하는 방법밖엔 없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참 나한테 못해줬는데, 그땐 왜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했는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감정의 변화로 나는 하루하루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살았다. 고마웠다가, 미웠다가, 괜찮아졌다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세월을 원망하고, 또 나 혼자 하고 싶은 말을 적어도 보고.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마음은,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마음. 우리는 이미 재였다. 재는 그냥 재다. 결국에는 남은 마음 하나, 고마움. 마음껏 아파하고, 원 없이 울었던 지옥 같았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나는 어느새 성장판이 열린 아이와 같이 부쩍 커져있었다. 내가 느낄 수 있을 만큼 훌쩍 커버렸다.


    인간은 끊임없이 성장한다고들 하지만, 이렇게나 클 수 있었던가? 늘 최고가 되길 바랬고, 가진 것도 많았으면 했는데, 이제 내 마음만은 small 사이즈도, medium 사이즈도 아니고, Extra large다!


    마음은 자란다. 내가 어떤 감정의 물을 주는지에 따라 더 잘자라거나, 더디게 자라거나. 어떤 감정의 물을 퍼올건지 판단하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물을 퍼오지 않으면 마음은 자라지 않는다. 그 마음에서 도망가거나 회피하거나 미뤄두면 마음은 죽는다. 마음을 키우는 연습도 해봐야 뿌리도 깊게 내리는 법. 좌절이라는 감정의 물이 너무 많았을 때의 마음, 행복이라는 물이 너무 많았을 때의 마음, 그 마음은 어떤지 살펴봐한다.


    그래, 내 마음만은 중간만 하지 않아. 나는 이제 중간만 하는 사람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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