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패션 디자인으로 밥 벌이 합니다

익숙하지 않지만 기분 좋은 낯섦

by Sean

내가 직접 디자인하고 그 디자인을 컨펌받고, 그 디자인한 옷은 어떤 원단을 사용할지 고르는 게 꽤나 재미있다. 공장에 내가 이런 옷을 만들 거다, 하고 테크니컬 팩을 보내주면, 내가 디자인한 옷과 내가 직접 선택한 원단으로 샘플이 오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샘플이 기대만큼 나오지 않으면 조금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 일이 꽤 재밌다.


무급 인턴으로 일한 지 5개월이 되던 때부터 파트타임으로 일하고 있다. 지금은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가 본인 나라로 잠깐 휴가를 떠나서 거의 한 달 정도 풀타임으로 일해주고 있고, 조만간 풀타임 오퍼 받기를 기대하고 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는 아직 론칭을 하지 않은 상태다. 미국 텍사스 기반 브랜드로 사장이 유명한 보디빌더다. 그는 처음에 운동복으로 사업을 시작했고, 다음은 에너지 드링크, 그다음이 내가 일하고 있는 브랜드다. 내가 일하고 있는 브랜드의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미들 네임이다.


내가 7월에 일했을 때는 9월로 론칭이 미뤄졌고, 그다음은 올해 1월, 그다음은 3월, 그리고 지금은 8월로 밀린 상태다. 21년도부터 준비한 브랜드인데 벌써 2년째라고 한다. 이 브랜드의 시작을 함께한 나의 보스 A가 가장 론칭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번 연도 8월에는 꼭 론칭을 함께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풀타임으로).


그녀도 내게 파트타임은 잠깐일 거라고 했지만, 1월에 풀타임을 주겠다는 그녀는 지금껏 아무런 말이 없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나에게 풀타임을 줄 거라는 믿음도 있다. 사람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나 또한 언제까지 파트타임만 하고 살 수는 없으니 5월까지도 소식이 없으면 슬슬 이직(?)을 해보려고 한다. 그전까지 포트폴리오도 준비하고, 패션 디자이너로 이직할 수 있는 곳도 찾아야 한다.


사실 나의 보스 A는 같이 일하기 쉬운 타입은 아니다. 그녀는 항상 바쁘게 살고, 심지어는 주말에도 일하고 평일에도 8시까지 일하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매일 피곤에 찌들어 있다. 자기가 했던 말은 기억하지 못하고 남 탓도 자주 하고, 효율적으로 일하지 않을 때도 있고, 내 일은 뒷전이고 본인 일만 챙기기 바쁠 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힘든 건 그녀의 눈치를 보는 것이다.


기분이 좋으면 막 친절하고 착하지만 기분이 안 좋으면 엄청나게 투덜대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이제는 그냥 그러려니 하지만, 처음에는 눈치도 많이 보고 괜히 주눅 들고 그랬다.


한국에서 살면서 한국어로 일하면 절대 겪지 않을 법한 일들을 겪기도 한다. 처음에는 나의 영어를 탓했다가, 이제는 내 성격이 그래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보스와 마찰이 있을 때마다 따져가며 보스 눈밖에 나는 것보다는 그냥 내가 숙이고 들어가는 게 더 좋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때로는 그냥 그런 곳에 감정소비하고 싶지도 않기도 하다. 나도 사람인지라 잠깐 짜증도 나지만, 금방 잊고 그냥 하게 된다. 보스가 뭐라고 한들 내가 안 받아들이면 그만이지 뭐~ 하는 생각이 크게 작용하는 것 같다.

IMG_4153.JPG

그리고 일단 내게 이런 기회를 준 사람이고(물론 기회를 잡기 위해 나도 노력했지만), 내가 배우려고 하는 모습을 보이면 이것저것 더 알려주기도 한다. 내가 무언가 부탁하거나 곤란한 일이 생긴다면 틀림없이 나를 도와줄 거라고 생각한다. 오늘 둘이서 점심을 먹고 오면서 어색함이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어색하다. 보스랑은 친해질 수 없나 보다.

IMG_3522.JPG 오늘 봅스 A와 먹은 점심

패션 디자이너의 삶은 꽤나 만족스럽지만, 역시 같이 일하는 사람이 가장 힘든 것 같다. 한국에서나, 캐나다에서나. 아직 스스로 내 영어 실력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 그녀 앞에서는 더 작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직 완전한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스스로 패션 디자이너라고 말하면 낯설지만 기분이 참 좋다. 특히 패션의 불모지인 캐나다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종종 믿기지 않으면서 괜스레 기분 좋게 만든다.


나는 패션 디자이너다!


IMG_3411.jpg


keyword
이전 09화수많은 영어 면접, 그리고 무급 인턴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