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나의 첫 알바가 끝나고, 졸업을 하고 일자리를 구할 때가 왔다. 캐나다는 인맥이 없으면 힘들다고 취업하기 힘들다고 하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처음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안될 것도 없지라는 생각에 나 혼자 해보고자 하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진짜 안되면 내가 원하는 회사 인사팀에다가 내 이력서랑 포트폴리오를 보낼 참이었다. 그렇게까지 한국인의 인맥을 통해 취업하고 싶지 않았다.
한국인의 인맥으로 취업하는 사람을 비난하거나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해보고 싶었고, 캐나다까지 와서 한국인들과 너무 자주 어울리거나 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유학 생활이 아니었을 뿐이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100개가 넘는 곳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여기는 연락을 잘해주지도 않을뿐더러 고용하는 과정이 매우 길다고 했다. 면접 연락을 기다리는데만 한두 달이 걸린다고 했으니 말 다했지 뭐.
한 150개쯤 넣었을 때였나, 서서히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여름쯤에 사람을 많이 구한다고 했으니, 여름에 구하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내가 딱 그 타이밍이었다. 소셜 미디어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주얼리 브랜드에서도 연락이 와 면접을 보고, 마케팅 회사, 어시스턴트 패션 디자이너, 프로덕트 코디네이터, 세일즈, 비주얼 머천다이저 등 다양하게 이력서를 넣은 만큼 다양하게 면접을 봐야 했다. 진짜 많이 봤을 때는 일주일에 3-4번 정도 인터뷰를 진행했다.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와 있을까 싶어서 이메일을 보는 것이 재미있는 삶을 살아갈 무렵, 이력서를 넣은 지도 몰랐던 곳에서 연락이 왔다. 잡 타이틀은 어시스턴트 패션 디자이너. 패션 디자인의 불모지인 이 캐나다에서 이 잡은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면접 날짜를 잡고 보니 이게 웬걸, 우리 집에서 300m 떨어진 곳이었다. 더 간절해지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는 동안 많이 떨렸지만, 그래도 그녀는 참을성 있게 나를 기다려주었다. 10분이면 끝난다고 했던 면접이 1시간가량 이어졌고,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그녀도 내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리고 역시나 2차 면접을 보자는 연락이 왔고, 가볍게 화상통화로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고 예상 연봉에 대해서 물어봤다. 이제 나도 연봉받고 일을 할 수 있을까 싶었던 찰나, 어도비 일러스트 테스트를 봐야 한다고 했다.
여기 와서 대충 교양 수업으로 들어본 게 전부였던 일러스트였지만,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싶어서 테스트를 봤지만 결과는 역시나 불합격. 한 번 불합격 통지가 오고 나니 우후죽순으로 불합격하기 시작했다. 면접 일정이 잡힐 때도 우수수 오더니, 한 번 떨어지기 시작하니 우수수 떨어졌다.
큰 회사는 아니었기에 기대가 컸는데, 정말 가지고 싶었던 잡 타이틀인 만큼 아쉬움도 커졌다. 한 3주쯤 흘렀을까, 우리 집과 매우 가까운 거리였기에 지나치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그냥 그녀에게 메일을 해보기로 했다. 무급 인턴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고, 그 자리에서 그녀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한국에 있는 나였다면 이런 일은 엄청나게 큰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 그때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는지 그냥 보내봐야지 싶었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꽤 빠른 시간 안에 답장을 받았다. 3시간 뒤였나. 그녀에게 사탕 발린 말을 조금 해줬더니 나름 으쓱했던 것 같기도 하다(살아남아야 하기에). 나를 무급 인턴으로 고용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시간을 내어 통화하자고 했다. 대단한 일도 아닌데 괜히 내가 대견스럽고 용기 있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으면 무작정 도전해 봐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순간이었다. 무급 인턴으로 써달라고 물어봤을 때 최악의 상황이 뭘까, 내 이메일이 씹히는 거? 아니면 안 된다고 거절당하는 거?
그래, 그냥 내 인생도 이렇게 사는 거야. 그냥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일단 움직여보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