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 첫 알바, 그리고 성희롱

안녕, 옐로 피버

by Sean

우연히 기회가 되어 친구에게 소개를 받아 토론토 리테일 샵에서 일하게 되었다. H 브랜드로, 캐나다 브랜드고, 남성복을 팔고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명품 편집샵 같은 느낌인데, 우리가 흔하게 알고 있는 몽클레어, 톰포드, 폴로, 캐나다 구스, 베르사체, 보스를 비롯해 한국에서 보기 힘든 브랜드도 함께 판매되고 있었다. 정장도 판매하고 있어서 구매하고 나면 직접 수선도 해주는, 아무튼 조금 럭셔리한 그런 편집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보다는 나이가 조금 있는, 그런 아저씨들이 많이 방문한다.


나는 처음에 로지스틱스 파트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영어를 자주 사용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할만했다. 아침 일찍 가서 일찍 퇴근했고 워낙 로지스틱스 담당 매니저도 나쁘지 않았다. 나는 주로 매장을 돌면서 일하는 것이 아닌 온라인으로 사람들이 주문을 넣으면 그 주문을 받아서 포장하는 역할을 했기에 뒤에서 일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매장에서 손님들을 응대해 주는, 즉 세일즈 맨들이랑도 나쁘지 않게 지냈다. 아시아인들, 특히 한국인들은 어려 보인다는 말을 많이 하기에 나보고 몇 살이냐고 물어오며 친하게 지냈던 사람들도 있었고, 유난히 동양인을 좋아하는 매니저도 있었다.


아무래도 비싼 옷들을 다루다 보니 세일즈 맨들이 수습기간을 끝내고 정직원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 말은 새로운 사람이 자주 온다는 뜻이다. 그렇게 나는 내 또래의 세일즈맨인 H를 만났다. 엄청나게 긴 머리와 자연 곱슬을 가진 그는 항상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다녔는데, 특유의 친화력으로 머리가 곱슬이냐, 향수 냄새 좋다, 고 칭찬하는 나를 그는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알고 보니 나와 어떻게든 한 번 자고 싶었던 그는 여자친구도 없다고 언제 시간 되냐고 물어왔고, 나는 그런 그가 점점 불편해졌다. 다른 사람들이 알려주기로 그는 그 당시 4살짜리 아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계약 기간이 끝나 잠시 일을 떠나 있었지만, 고맙게도 그들은 나를 비주얼 머천다이징 쪽으로 다시 고용해 주었다. 그 말은 그와 함께 매장 안에서 계속 일을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는 자신의 수습기간이 끝나갈 때쯤이 되자 더 노골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태권도를 오래 했다는 그는, 한국어를 알고 있다면서 '고추 빨아'라는 농담을 건넸다.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수차례 경고를 날렸음에도 그는 점점 본색을 드러냈다.


당시 남자친구가 있던 나는 그런 대화가 불편해졌지만, 그는 계속해서 잠자리를 암시하는 이야기를 했고, 그가 일을 그만두기 일주일 전에는 나에게 원나잇을 제안했다. 원나잇을 하고 나만 입 다물고 있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라며. 너의 엉덩이가 나를 미치게 한다는 둥, 너처럼 작은 여자를 들고 하는 것은 일도 아니라는 둥, 너의 아랫도리는 타이트하냐는 둥의 외설적인 성희롱을 겪고 나니 나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이때 확실히 알았다. 그는 옐로 피버가 있다는 사실을. 동양인 여자들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진짜 큰 마음먹고 매니저에게 이야기하기로 결심했고, 세일즈 총괄 매니저인 J에게 그를 고발했다.


다음에 출근하고 나니 비주얼 머천다이징을 담당하고 있는 나의 매니저와 총괄 매니저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영어가 모국어였던 그는 어떻게 이야기를 했는지 내가 받아준 것이라고, 나와 문자도 했다면서 보여줬단다. 단순히 내 동료였기에 잘 지내고 싶어서 매몰차게 거절하지 않았던 게 이렇게 발목 잡힐 줄이야.


총괄 매니저 또한 당연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을 거다. 특히 성희롱과 관련된 문제라면 일이 커지니까. 그러면서 은근히 나의 잘못도 있다는 식으로, 결국엔 너도 그런 말장난에 응해주었기에 희롱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을 들은 사람이 있냐,라는 식으로 나를 몰아갔다.


H는 똑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이 주위에 있을 때 나에게 말을 걸거나 그런 종류의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고, 항상 사람들이 없을 때, 내가 구석진 곳에서 옷을 정리하고 있을 때 슬며시 다가와 그런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영어가 편하다고 느끼지 않았던 나는, 그냥 결국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했다.


환멸이 났다. 여기도 다를 바 없구나. 자기들 일이 될까 봐 두려워하는구나. 하긴, 한국어로도 아무리 설명하고 이야기해도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하물며 영어로 내가 이런 걸 다 어떻게 설명하나 싶기도 했다. 무력했고, 한국이면 당하지 않았을 일들이라고 생각해서 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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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겪고 났는데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그 일이 있고 한 달 정도 기간을 그들에게 공지한 후 캐나다에서 공식적으로 돈을 받고 했던 첫 알바는 끝이 났다. 2021년 10월부터 2022년 5월까지. 최저시급을 받고 일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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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매번 배달오던 드라이버가 나에게 준 쪽지. 공교롭게도 그도 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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