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인턴, 나 영어 못하잖아?

한국에서의 영어는 아무것도 아니다

by Sean

영어 회화는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다.

언니와 남동생이 투니버스나 챔프 같은 만화를 볼 때 나는 CSI나 도전 슈퍼모델, 혹은 프렌즈를 봤었다. 그 사람들 억양 흉내 내는 걸 좋아했기에 회화를 배운 적 없지만 말을 할 수 있었던 건지, 아니면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가 인풋이 되어 아웃풋으로 나왔던 건지는 모르겠다. 아니면 어릴 때부터 배웠던 윤선생 덕분일지도.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람들과 직접 영어로 소통하는 게 한국에서 배웠던 영어와는 훨씬 더 매력 있다고 느꼈다.


나는 한국에서도 영어로 무언가 발음하고 소리 내어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마다 친구들이, 선생님들이 나의 발음을 칭찬했고, 발음에 신경을 많이 쓰는 친구들에 비하면 나는 영어 발음에 대한 걱정은 하나도 없었다.


고등학교 모의고사 영어는 항상 2등급 아니면 3등급 정도 나왔다. 단 한 번도 1등급을 받아본 적 없었고,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에서는 77점을 받았다. 엄마가 많이 실망했다고, 너무 부끄럽다고 했던 기억이 강렬했는지 잊히지가 않는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커왔고, 그런 영어가 싫었다. 학교 시험에서 90점 밑으로 떨어져 본 적 없는 언니가 있었기에 나의 첫 77점은 엄마에게 엄청나게 큰 충격이었을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영어로 무언가 보는 것은 좋아했다. 한국 드라마보다 영어로 말하는 드라마가 훨씬 더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그래서 듣기 평가는 항상 잘해왔던 것 같기도 하고.


나의 해외여행 친구는 항상 친언니였다. 하지만 언니는 나보다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직접 이야기하는 것을 싫어하는 대신 여행 계획을 세웠고, 의사소통 담당은 나였다. 영어권 국가가 아닌 곳에 가서는 그들도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답답했지만, 그들과 영어로 대화하는 게 재미있었다. 여행을 하면서 영어로 어려움을 겪는 일은 없었다.


영어의 본 고장인 영국으로 놀러 갔을 때도 머물던 호스텔 사장님이나 리셉셔니스트와 스몰톡 하는 게 재미있었고, 중간중간 못 알아듣는 게 있어도 한국인의 눈치로 대충 때려 맞추고는 했다. 이렇게 원어민이랑 스몰톡을 할 정도니, 유학을 가서도 금세 배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보기 좋게 깨졌지만.


4월 말부터 방학이 시작되면 8월까지 인턴을 하면서 280시간을 채워야 했다. 내가 고른 수업 과정이었기에 무조건 해내야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부터 면접을 보기 시작했는데, 그동안 해왔던 영어와는 완전 딴판이었다. 교수님의 수업을 들으면서 나의 영어가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을 느껴가던 와중이었는데 이렇게 영어로 인터뷰를 보니 나는 완전 박살이 났다.


그래도 운이 좋게 세 군데 정도에서 연락이 왔고, 나는 리부트를 하는 곳을 선택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가서 사람들도 만나고 일도 하고 인맥도 쌓고 재봉틀도 만질 수 있는 그 회사를 갈걸, 하는 후회가 있지만. 리부트로 일을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무조건 팀들이랑 화상 회의를 해야 했다.


나는 그 시간이 끔찍하게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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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내 소개를 할 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니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천천히 이야기해 주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 사장님은 여기에 있는 사람들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이 많다고 맞받아쳤다. 여기서 태어난 홍콩인, 혹은 같은 알파벳을 쓰는 브라질 친구.. 나는 그들과 같은 취급이었다. 억울하지만 어떻게 해 내가 선택한 일이니 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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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팀원이 화상 회의를 하고 내가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는지 짧게 리포트를 해야 했다. 그들에겐 비즈니스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난 도망가고 싶었다.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다. 나에게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는 것은 사실 아직도 싫다.


제품 촬영이 있으니 오고 싶은 사람은 오라고 했지만 가지 않았다. 우리 집에서 불과 15분 떨어진 곳이었는데 영어 때문에 가기 싫었다. 이런 내가 부끄럽고, 영어를 배우러 왔는데 이러고 있는 게 싫었다.


나의 보스였던 크리스털은 학교에 나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고 더 큰 회사에서 일해볼 기회를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라고 아주 솔직하게 써주었다. 한국이었으면 야무지다고, 똑 부러지게 일 잘한다고, 자기 할 말은 할 줄 안다고, 부당한 대우는 받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여기서 나는 언어 때문에 바보처럼 보였다.


여행 영어는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졸업하고 여기서 취직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나 영어 진짜 못하네. 여기서 살아갈 수는 있을까?라는 생각이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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