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마음에 품고 있던 사업 그리고 유학
11살, 4학년 무렵이었나. 그때 가장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캐나다로 유학을 간다고 했다. 어린 마음에 나도 따라가고 싶었고, 일본이든 어디든 유학을 보내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매우 보수적이었던 우리 아빠는, 유학은 커녕 성인이 되어서도 10시만 넘으면 전화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때도 유학 이야기를 꺼냈지만, 엄마 쪽 삼촌이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혼전 임신을 한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던 아빠. 나에게 미혼모 이야기를 했다. 유학 가서 미혼모가 되어서 돌아오면 어쩔 거냐면서. 그렇게 보수적이고 걱정 많던 아빠도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을 말릴 순 없었다.
어렵사리 아빠의 허락을 받아내고, 아빠의 부담을 덜기 위해 1년은 한국에서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렌트비며 생활비며 많이 들 텐데 9월부터 수업을 듣겠다고 했다. 아빠에게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유학은 이렇게 결정이 났다.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은 안정적이고 취업이 잘 되는 과를 찾기에 유아교육과, 요리학과를 많이 진학한다고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과로 진학하고 싶지 않았다. 유학원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했다. 그래도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아빠가 알아줬으면 했는데 우리 아빠는 여전히 모른다. 그만큼 나한테 믿고 맡기는 거겠지, 싶다.
권고사직을 당하고 난 직후, 유학이 결정 나고는 귀걸이나 목걸이와 같은 주얼리를 만들어 팔아보자면서 얼마 안 됐지만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동대문 시장을 돌았다. 명확한 디자인 없이 동대문에서 어떤 조합이 어울릴지 생각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웠고, 무턱대고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안 맞는지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에는 도구를 모두 다 사야 했고, 예뻐 보이는 것들을 하나씩 고르다 보면 십만 원씩 깨지기도 했다. 도금이었기에 좋은 퀄리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 만들어본 것 치고는 재밌었다. 내가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에 꽤 흥미가 있다는 사실을 이때부터 알았던 것 같다. 밤을 새워가며 만들었던 귀걸이와 목걸이. 손이 아팠지만 그래도 무언가 창조해 내는 게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웃긴 건 나는 목걸이나 귀걸이를 잘하지 않는다. 특히 엄청 공주풍이거나 너무 페미닌 한 느낌의 귀걸이라면 더더욱. 그냥 나는 뭔가 이렇게 만들어내는 게 좋았다. 팔지도 못해 보고 끝냈지만, 친구들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사업은 정말 쉽지 않구나, 느끼면서 접었다.
그래도 돈 몇 십만 원에 이만하면 인생공부 했다 치고 다음에 내가 무언가 하고 싶을 때면 조금 더 꼼꼼하게, 초기 자본도 제대로 모아서 해야겠다, 생각했다. 단순히 사입하고 파는 것도 이렇게 어려운데 다들 자기 브랜드는 어떻게 만드는 건지, 내 친구들, 그리고 선배, 후배들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것 말고도 여러 사업에 도전해 봤지만 사실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나중에 쓸 수 있는 중요한 자본을 배워뒀다고 생각한다.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움직이는, 내 모습이 좋았다. 유학도 간다고 하니 괜스레 기대되고 뿌듯하기도 했다.
그렇게 한국에서 2020년 9월부터 2021년 3월까지 학기를 듣게 되었다. 온라인으로, 밤 낮이 바뀐 채로.
사업은 실패했지만 그래도 유학이라는 큰 꿈을 이뤘으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캐나다에 갈 날만 기다린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