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그런 회사에 들어가기는 싫은데
4학년 1학기를 그렇게 졸업 작품으로 마무리하고 그 해 여름에 뉴욕과 토론토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는 1학년, 2학년을 다니다가 1년을 휴학했고, 편입 준비를 했지만 실패했다. 그리고 3학년과 4학년에는 정신 차리고 장학금도 받는 꽤 알찬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간판이 중요한 대한민국에서 이 학교로 좋은 회사로의 취업은 힘들어 보였다.
종종 좋은 곳으로, 소위 말하는 대기업으로 취업하는 선배들이 있다고 했지만 꿈만 같았고, 남자 선배들 같은 경우에는 창업하는 경우나 아예 다른 진로로 트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 선배들은 대부분 그냥 그런 곳으로 취업하거나 집에 돈이 많아 카페를 차리거나 조금 일하다 때려치우고 놀러 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나는 진짜 그저 그런 곳으로 취업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내봐야지 하는 생각에 꽤 유명한 브랜드에서도 면접을 봤었다. 디자인 포지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늘 관심 있었던 원단 팀에서도 면접을 봤었고, 2차까지 갔지만 떨어졌다.
그래도 내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포기할 수 없었다. 바이어가 되고 싶었던 나는, 바이어와 함께 일하는 곳에서 일을 해봐야겠다고 다짐하고 벤더회사에 지원해 보기로 했다. 컬러팀에도 지원해 보고, 해외 영업팀, 그리고 원단 팀에도 지원했다. 당시에는 여의도로 가고 싶었지만, 컬러팀과는 인연이 닿지를 않았고, 해외 영업팀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아주 큰 패션 벤더 회사였고, 나는 아르바이트/인턴으로 들어갔지만, 다대다 면접을 봤었다. 나는 그런 면접 분위기를 기대하고 갔던 게 아닌 터라 준비를 하나도 해가지 않았는데 하필 내 성이 김 씨라 가장 먼저 자기소개를 해야 했다. 그냥 간단하게 내 소개를 하고 끝냈는데 다른 지원자들은 1분 스피치를 제대로 준비해 왔더라. 참, 내가 얼마나 우스워보였으려나.
그중에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에 모두 능통한 지원자도 있었고, 다른 벤더에서 일해본 경험을 가지고 있는 지원자도 있었다. 면접관 수는 기억나질 않지만 지원자 9명이서 함께 면접을 봤었다. 정말이지 아무 기대하지 않고 갔다가 엄청 긴장하고 나왔다.
나중에 나의 팀 차장님이 거기에 계셨는데, 나에게 왜 벤더 신입사원으로 지원해보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물어봐주셨고, 나중에 꼭 신입사원으로 지원해 보라고 응원해 주셨다. 내 학벌이 부끄러웠지만 힘을 주셨던 게 아직도 감사하다. 그래서였는지 몰라도 나는 주 5일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 강남으로 출근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아르바이트라고 하더라도 웬만한 기업에서 일한 만큼의 경력을 쳐준다던, 큰 회사였다. 그래서 기대도 크고 정말 잘 해내고 싶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나의 의지는 꺾였다. 그리고 큰 회사 특성상 6개월 이상 계약 연장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일한 지 7주 만에 권고사직을 당했다.
학교 다닐 때 일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내가 그토록 일해보고 싶었던 회사였는데, 힘들게 면접도 뚫고 들어왔는데. 슬펐다. 7주밖에 일하지 않았음에도 서운함이 몰려왔고,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엄청나게 바빠서 아르바이트 생들도 첫 차 타고 집에 간다는, 바쁘기로 유명한 벤더 회사였는데, 마음이 쓰렸다.
좋은 경험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더 일하고 싶었고, 정말 그저 그런 회사에 입사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렇게 큰 회사에서 초봉도 높은 곳에서 시작하고 싶었다.
잠깐이었지만 그 단 꿈에서 나와야 했다. 다시 취준생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내 처지가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