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디자이너는 하지 않을 거야
처음으로 옷에 대한 열정을 가지고 있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어떻게 내가 의류학과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패션 디자인을 선택하기에는 그림 실력은 꽝이었던 나는, 자연스럽게 옷을 공부하고 싶은데 실기는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의류학과를 선택하게 되었다.
입학이 확정 나고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한 후 모은 돈으로 휴대폰을 바꾸기 위해 대리점을 갔던 그날을 기억한다. 신입생이냐며, 어떤 과에 입학했냐고 물어보셨던 그 대리점 직원. 그분에게 자랑스럽게 의류학과에 진학했다 하니 돌아오는 말, '배고프게 살겠네. 왜 그런 과를 갔어?'.
사회의 시선이 이런 건가. 참 냉정하다 싶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게 맞다고 하는 어른들의 이야기는 거짓말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고 약간의 배신감도 들었지만, 생각보다 큰 타격은 없었다. 옷 공부는 정말 해보고 싶었으니까. 내가 훗날 직업으로 가져도 싫지 않을 것 같았다.
어릴 때부터 꾸미기를 좋아하고 옷을 내가 선택해서 사 입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우리 엄마와는 많이 달랐다. 기능성, 실용성이 중요하고 언니가 입던 옷을 물려 입기를 바랐던 엄마는 나의 그런 욕구를 채워주지 못했다. 그래서 더 의류학과에 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번도 디자이너를 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모두가, 아니 대부분이 생각하는 '패션 다지이너'라면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옷도 매우 독특하게 입으며, 항상 예민하고 까칠하고, 예술적 기질이 풍부한 사람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그랬기 때문에 디자이너는 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는 그림을 못 그리니까, 나는 다룰 줄 아는 소프트웨어 툴 하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디자이너 자질이 없다고 생각했고, 남들이 생각하는 바이어, 머천다이저, 아니면 그냥 마케팅 쪽으로만 생각했다.
처음에는 바이어가 되고 싶었다. 영어를 잘해야 한다고 했고, 그 당시에도 여행하는데 영어는 무리 없이 했으니, 조금만 더 잘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시험 영어만 못하는 거라고, 실제로 살면 또 다르다고 또 자만한 채.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무슨 일을 했을까? 의류학과에 나왔으니 온라인 머천다이저나 아니면 그냥 일반 회사를 들어가서 대기업으로 이직할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스타일리스트는 너무 박봉이고 체력적으로 힘드니 안 했을 것 같기도 하고. 컬러리스트 자격증이 있으니 그걸로 컨설팅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의 삶과 어떻게 달랐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의류학과에 진학했던 걸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디자이너는 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림도 못 그리고 창의력도 없으니까!
뭘 모르는 소리. 우리가 보고 있는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은 정말 일부에 불과할 뿐, 패션 디자인도 별거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