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생각보다 재밌네?
2018년 9월부터 2019년 5월까지, 내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이벤트가 있었다. 바로 졸업 작품 패션쇼.
준비 기간만 꼬박 1년이 걸리고, 돈도 생각 이상으로 많이 든다. 원래는 2~3개의 팀에 속해서 3벌의 의상을 만들어야 했지만, 나는 마음 맞는 친구 두 명과 함께 한 팀에서 3벌을 만들었다. 나와 다른 친구는 각각 3벌씩, 그리고 디자인에 열정이 넘치는 다른 오빠는 7벌이었나, 만들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콘셉트를 정한다. 그리고 이미지 맵을 시작으로 원단 맵, 실루엣 맵, 컬러 맵 등 다양하게 우리가 하고자 하는 방향을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 모든 것은 교수님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진행이 가능하다. 내가 속해있던 조는 '초현실주의'를 팀 콘셉트로 잡았었고, 르네 마그리트가 우리의 뮤즈였다.
나는 이 일련의 과정이 좋았던 것 같다. 그때는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고 조원들과도 트러블이 계속 있었기에 재미있는 줄도 모르고 지났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과정이 재미있었고 또 좋았다.
모든 것이 컨펌 나고 나면 그때부터 디자인을 시작하는데, 디자인 또한 교수님의 컨펌을 받아야 했다. 컨펌을 받고 나면 옷의 패턴을 만들고, 가봉과 패턴 수정을 반복하며 원하는 디자인이 나올 때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동시에 동대문 시장을 돌면서 원하는 원단을 골라야 하고, 또 옷에 들어갈 부속품들(단추, 지퍼 등등)을 골라야 한다. 이 모든 원단이나 트림(부속품)들 또한 조원들과 비슷하게 맞춰야 하고, 콘셉트도 비슷하게 맞춰야 한다. 원단을 고르기 전에 동대문에서 공짜로 가져갈 수 있는 스와치들을 모으고, 조원들과 상의 후 원단을 구매한다.
가봉을 하고 마음에 드는 디자인이 나오기 시작하면 직접 사 온 원단으로 옷을 만들어보기 시작한다.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하지 않으려면 한 번에 제대로 된 원단을 고르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런 경험이 많지 않은 우리는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원단의 질감, 느낌 이 모든 것이 캔버스 천과는 다르기 때문에 막상 만들고 나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가 허다했다.
체력적으로 힘들고 모델 피팅을 하기 전에 준비가 어느 정도 되어야 했기 때문에 시간 압박도 심했다. 내가 디자인하고 만든 옷이 교수님에게 거절당하고 다시 해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속상하기도 하고 진이 다 빠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모든 것을 해내는 나 자신이 멋있게 느껴졌다.
이렇게 모든 것이 준비되고 2019년 5월, 나의 제대로 된 첫 작품이 세상에 나왔다.
리허설을 위해서, 그리고 쇼 전에 준비할 것들을 위해서 강남에 아침 6시까지 도착해야 했다. 나와 같은 조인 다른 친구는 버스로 3 정거장 떨어진 곳에 아주 가깝게 살고 있었기에 새벽 5시에 만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옷들은 전 날 미리 학교에서부터 출발했기에 우리가 챙겨야 할 것은 쇼에 입을 옷이랑 화장할 화장품들 뿐이었다.
고맙게도 후배 헬퍼들 또한 아침 7시까지 와주었고, 모델들이 오면 리허설을 시작한다. 워킹 방향이나 음향 조절, 조명 조절 등을 이때 시행한다. 총 2번의 리허설을 진행하고 나니 언제 시간이 흘렀는지 쇼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쇼 또한 2번의 시간대에서 나눠서 진행했고, 오후에는 가족들이 대부분 참석하는 편이었고, 저녁에는 친구들이 와줬다.
이 5분 남짓한 쇼를 위해서 1년을 달려왔다. 그래도 그때의 기쁨과 뿌듯함은 지금도 잊기 힘들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큰 이벤트를 꼽으라고 하면 졸업 작품 패션쇼가 아닐까 한다. 그만큼 뜻깊었고 내 대학 생활을 화룡점정으로 마무리해줬다.
모든 쇼가 끝나고 나면 친구들과 가족들이 준 선물들을 바리바리 들고 뒤풀이를 간다. 나는 술을 전혀 못하지만 그날만큼은 빠지고 싶지가 않았다. 뒤풀이에서 다음 날 새벽 6시가 되어서 집으로 돌아갔고, 끝났다는 시원함보다는 내가 이걸 해냈다,라는 사실이 더 기분 좋았다.
옷을 디자인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디자인한 옷이 세상에 나온다는 것. 꽤나 매력적인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