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는 sexist입니다
제목이 자극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내가 나의 아빠를 성차별주의자로 부르고 싶진 않으니까. 하지만 우리 아빠는 sexist, 성차별주의자다.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들었던 말들을 비롯해 여전히 우리 아빠는 그렇다.
나는 세 남매 중 둘째로, 위로는 언니, 밑으로는 남동생이 있다. 이렇게만 소개해도 어릴 때 만났던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아들 보려고 둘째 낳았네~"
우리 아빠 39살, 엄마 36살에 내 동생을 낳았다. 아들이고 그때 당시에는 조금 늦은 나이에 막내를 봤으니 예쁠 수밖에. 아빠는 늘 말했다.
"너희 할아버지가 네 동생 태어난 거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나의 친할아버지는 내가 1살이 되었을 때쯤 돌아가셨다. 나는 당연히 기억에 없지만, 항상 나를 보면서 "이놈이 장군감이 고만, 아들로 태어났어야하는디" 라고 하셨다고 했다. 어릴 땐 이게 칭찬인 줄 알았는데, 나의 성을 부정한 거였다. 내가 아들이 아니라서, 딸이라서 아쉬우셨던 거다.
동생과는 대놓고 차별하진 않았지만 은근히 차별 섞인 말들이 싫었다. 나에게 크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지만, 솔직히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만들어 놓은 것 같긴 하다. 마치 내 몸에 있는 타투같이.
"여자애 둘이나 집에 있는데 엄마 아빠 시골 갔다 오면 빨래도 좀 하고 그러지!"
"이게 여자애들 둘 있는 집 꼬락서니야?"
분명 남동생이 주방에 가까운 거실 소파에 앉아있었는데 언니를 불러 수저를 놓으라는 엄마가 기억난다. 나한테 시켰으면 바락바락 화낼걸 알고 일부러 언니한테 시킨 거다.
"왜 얘 거실에 있는데 굳이 방에 있는 언니 불러서 시켜?"
라는 내 말에 대답하지 못했던 엄마.
"어휴 그냥 그러려니 좀 해!"
그래, 그냥 또 그렇게 어물쩡 넘어가려고 하지.
왜, 쟤가 아들이라서? 남자라서 안 시켜?라는 말이 목구멍을 간지럽혔지만, 싸우기 싫어서 삼켰다.
엄마는 아빠에게 찬 밥을 주는 일이 거의 없었고, 저녁 늦게라도 오면 꼭 밥을 먹을 거냐고 물어보고, 시간에 관계없이 밥을 차렸다. 그리고 우리 엄마는 운전을 못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주방 일은 여자일, 운전은 남자 일이라고 배웠다.
나에게 늘 운전을 배우라던 아빠.
도로 위에서는 여자 운전자를 욕하는 아빠.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고, 자기 손으로 뽑았지만 이래서 안 된다며 자기 선택을 후회할 때도 '여자'여서 그렇다던 아빠. 큰 일은 남자가 하는 게 맞다고, 자기 직원도 여자들은 잘 안 뽑는다고, 여자들은 잘 삐친다던 우리 아빠. 그럼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사나, 아빠의 말은 가끔씩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네 동생이 잘돼서 김 씨 집안 좀 일으키면 좋겠다. 어째서 김 씨 집안 남자들이 이렇게 다 별볼 일이 없는지."
"내가 하면 되지~ 내가 성공해서 효도할게 걱정 말아~"
"민선아, 평범하게 사는 게 제일 좋고 어려운 거야. 평범하게만 살어."
"왜 내가 여자라서 나는 안 되는 거야?"
"그게 아니지, 평범하게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그냥 평균으로만 살면 돼."
내가 여자라서 그러는 거 안다.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모습 보여주는 게 아빠에게 최고의 효도일 거다. '남편의 그늘' 밑에서 그냥 편안하게 살아가는 게 아빠가 말하는 '평범'한 삶이라는 것도 안다. 그런데 아빠, 나는 그렇게 살아가기 싫어.
흔히 말하는 '순종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우리 엄마를 만난 아빠는 종종 엄마를 무시하는 발언을 하고는 한다. 그러다 기분이 상한 엄마가 한 마디라도 하면 아빠는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싸움으로 번진다. 그럴 때 심하게 말하는 아빠를 보며,
"아빠가 엄마를 그렇게 대하는 건 내가 시집가서 내 남편한테 그런 대접받아도 된다고 아빠가 직접 허락하고 있는 거야. 아빠가 엄마를 지금 그렇게 대하는데, 아빠 딸은 누가 소중하게 여겨줬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거, 그거 욕심이야. 엄마도 아빠 와이프기 전에 할아버지 딸이야. 그러니까 그만해."
라고 쏘아붙였다.
그리고 나면 아빠와 나의 싸움으로 번지지만.
이런 말들이 나에게 쌓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나에게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말이다. 동생에게는 '남성'이기 때문에 허용되는 것이 더 많아지는 게 싫었다. 어릴 땐 항상 남자가 되고 싶었고, 내가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종종 나를 슬프게 했다. 이런 마음을 극복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조금 더 바른 생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남성도, 여성도 특정한 성별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아빠, 난 그래도 내가 여자여서, 아빠 딸이라서 행복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