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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이기 전에 사람입니다

난 너의 샌드백이 아니야!

by Sean

남들이 생각하기에 해외에서 일하기 겁내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언어가 아닐까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영어.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해 왔고, 아직까지도 비즈니스 영어는 어렵다.

다른 나라 거래처와 수많은 미팅, 그리고 내부 미팅에서도 쫄기 마련이지만, 가장 힘든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바로 나의 상사 A.


A는 필리핀과 독일 혼혈로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독일어나 따갈로그어는 못하고 영어가 모국어이다. 어렸을 때 가난하게 자랐다고 했고, 그 때문인지 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예를 들면 자기가 비싼 소파를 샀다던지, 혹은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시세가 얼마인지 등등.


나는 스몰톡하는 것을 좋아하는 편인데, A와의 스몰톡은 불편하기 그지없다. 내 관심사도 아닐뿐더러 상사이고, 나를 감정적 샌드백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다.


내가 부탁해서 만들어 달라고 했던 인턴 자리였고, 그 후에 주 25시간 돈을 받고 일하고 있어서 그런지, 그녀는 내가 자신을 엄청 동경하고 존경하기 때문에 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조금 더 (좋게 말하면) 편하게 대하는 것 같고, 혹은 (안 좋게 말하면) 막대한다.


하루는 패션 디자이너가 아닌 감정 노동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사람을 눈치 보게 하고, 또 기분이 좋지 않으면 엄청나게 투덜대는 스타일이다.


"헤이 A, 나 지금 슬랙(메신저)에서 이 거래처랑 이야기 중인데 디자인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자,

"션, 나는 지금 네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 혀 모르겠어. 어떤 디자인을 말하는 건지 네가 이야기해 줘야 알지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듣지?"

"나는 지금 가죽 파우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

"그래 그럼 처음부터 그렇게 명. 확. 하. 게 이야기해 줘야 알지. 그런 식으로 말하면 내가 못 알아듣잖아."


라는 식이다.


그녀는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알고 있고(그 메신저를 사용하는 거래처는 오직 3군데뿐이라 알아듣지 못할 수가 없다), 문맥상 파악할 수 있어도, 혹은 정말 알아듣지 못할지라도 자신이 기분이 안 좋으면 저런 식으로 말을 한다.


혹은 금요일에 "거래처에 가격을 먼저 물어보고 피드백을 보내는 걸로 하자"라고 이야기가 끝났는데, 주말이 지나고 월요일에 "헤이 션, 너 왜 거래처에 피드백 안 보냈어?"라는 식이다.


"네가 가격 먼저 물어보고 피드백 보내자고 해서 그들에게 답장 오길 기다리는 중이야."라고 대답하면 그 대답에 기분이 상한 그녀는

"아니, 우리는 그럴 일이 절대 없어. 무조건 피드백 먼저 보내고, 그들이 다음 샘플을 만들기 전에 가격을 물어보면 되는 거야. 우리는 절대 따로 가격을 먼저 물어보지 않아."

라는 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고 내 탓하기 일쑤다.


그날은 기분이 꽤나 상했는지 점심식사를 하고 있는 나를 계속 불러서 이 가격은 왜 이렇고 진짜 이게 맞냐는 둥 사람을 피 말리게 했다. 그렇게 하고 시간이 지나면 자기도 미안해지는지 괜스레 한 번씩 말을 더 걸고는 하는데 가끔 정말 지친다.


내가 정말 부족하거나 실수한 부분에 있어서 이야기를 하면 감정 상하지 않고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종종 그녀의 억지에 금세 피로해지기도 하고 지치기도 한다. 나도 사람인지라 어떤 날은 아무리 뭐라고 해도 받아들이고 그냥 까먹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진짜 받아주기 힘들 때가 있다. 대부분은 퇴근과 동시에 잊어버리지만.


그래서 이직을 결심하고 계속해서 다른 직업을 알아보는 중이지만, 여기 캐나다는 모든 일이 느리다.

답장도 늦고 어떻게 프로세스가 되고 있는 건지도 알 수가 없어서 계속 지원해 보는 수밖에 없다.


하, 나도 직원이기 전에 사람인데. 외국인이기 전에 사람이고 한국어로 말하면 누구보다 잘 말할 자신이 있는데. 내가 한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조금은 서러웠던 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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