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명 중 TOP3가 저라고요?

캐나다 대기업 파이널 면접기

by Sean

정리해고 소식을 들은 첫날, 2023년 9월 27일.


그날 친구를 만나고 집에 오자마자 이력서를 수정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잡 포스팅에 내 이력서를 넣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3년 9월 28일 새벽 1시쯤 잠이 오지 않아 매번 이력서를 보냈지만 실패했던, 캐나다 대표(?) 의류 기업에 이력서를 다시 냈다. 약 12시간 후, 답장이 매우 늦는 캐나다에서 이례적으로 바로 다음 날, 한 번도 내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그 회사에서 9월 29일 아침 9시 반에 1차 면접을 보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대기업 면접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전 회사에서도 30분 면접이라고 했지만 내게 주어진 시간은 오직 8분이었기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해야겠다고 다짐 후, 아무런 긴장이나 떨림 없이 하루를 보냈다.


9월 29일 아침 8시 40분쯤 느지막이 일어나 면접 준비를 했고, 전혀 긴장되지 않은 마음으로 9시 26분에 컴퓨터를 켜고 면접관을 기다렸다. 그녀는 정확히 9시 30분이 되자마자 들어왔고, 이 인터뷰는 25분 진행될 거야,를 시작으로 회사가 제시할 연봉, 회사의 복지 등에 대해 설명해 준 후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하지만 정말 친절했던 그녀와 이상하리만큼 말이 잘 통했고, 25분을 보겠다던 면접은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체감상 10분 정도 흘렀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내게 질문이 없냐고 물었고, 나는 1차 면접 결과가 언제쯤 나오는지, 인터뷰 절차가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1차가 끝나면 2차로 시니어 디자이너와 면접이 있을 예정이고, 거기서 뽑히면 '창의적인 과제'를 해서 발표를 해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 대기업은 발표까지 해야 한다고? 3차까지 있으니 당연히 나는 안될 거 같은데, 아무튼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생각하고 그녀와 이야기를 마쳤다.


1차 면접을 보고 일주일 뒤인 10월 5일, 나와 면접을 봤던 그녀에게서 Next step!이라는 메일을 받았고, 나는 2차 면접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내가 면접을 볼 사람은 시니어 디자이너로, 한국인이었다. 10월 16일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보았고, 10월 13일이 마지막 근무였던 나였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타이밍이었기에 10월 16일 오후 3시 반에 2차 면접을 보기로 했다.


2차 면접 당일, 역시나 3시 26분에 받은 링크 주소로 먼저 들어가 있었고, 약 5분 뒤 한국분이 들어오셨다. 캐나다에서 같은 한국인과 영어로 면접이라니. 그녀는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소개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갑자기 다른 한 명이 더 들어왔다. 그 또한 시니어 디자이너였고, 이런저런 질문을 주고받다가 '왜 내가 너를 뽑아야 하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영어 organized 발음이 꼬였다. 'or.... g... or.. ga...'라며 말하는 나에게 [올가나이즏?] 하고 대신 대답해 주셔서 'Oh my god, thank you so much! Yes, organized! That's what I wanted to say!'라고 천연덕스럽게 받아쳤다. 그리고 동시에 느껴지는 망했다는 직감.


언제 결과를 알 수 있냐는 물음에 내가 2차 거의 첫 순서라 얼마나 걸릴지 모를 거라고 했다. 500명이 넘는 지원자 덕분에 2차도 정말 많은 사람들과 면접이 남아있다고 했다. '그래서 3차는 몇 명이 가는데?'라는 내 물음에 'Maximum 3'라는 그의 대답.


'최대 3명'


'오우 그럼 나는 내가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너무 스스로 자랑스럽고 다행이라고 생각해'라고 대답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강하게. 1시간이 걸릴 거라던 인터뷰는 30분 만에 끝났고, 영어 단어도 절었다.


10월 16일 2차 면접 후, 정확히 일주일 후인 10월 23일. 나와 면접을 봤던 백인 여자에게서 또다시 Next Step!이라는 메일이 와 있었다. 와 이거 진짜 꿈인가.

Screenshot 2023-11-24 at 12.43.15 AM.png 발표 자료 중 일부.. 흑

그녀와 짧은 통화 후, 과제를 받았고, 나는 그 과제를 들고 11월 3일 발표를 해야 했다. 그들의 본사로 가서, 시니어 디자이너들 앞에서! 일주일 동안 어떤 디자인을 해서 낼지 고민을 많이 했고, 과제를 제출하고 나서는 발표 준비를 했다. 그 와중에 다른 곳 또한 면접을 보면서 과제를 또 해서 제출해야 했기에 그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발표 당일, 내가 했던 모든 프레젠테이션 중에 가장 잘했다. '영어로 내가 이렇게까지 발표할 수 있다고?' 느껴지는 순간이었지만, 아주 중요한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고, 그로부터 일주일 뒤, 11월 10일, 그녀에게선 더 이상 Next Step! 이 오지 않았고, Update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했고, 내가 왜 이 포지션에 맞지 않는지 무엇을 더 보완하면 좋을지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사실 직감하고 있었기에 크게 상심하지는 않았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그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날 죽이고 있었다.

Screenshot 2023-11-24 at 12.45.09 AM.png 이제는 나의 포트폴리오로 써버리게 된 발표 자료

지금은 그로부터 2주가 흘렀고, 결과를 듣고 난 후 주말은 몸이 좀 아팠다. 그리고 그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조금 우울했고, 의욕도 생겨나지 않았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고, 사는 게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그래도 후회의 마음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후회 없이 발표했고, 깔끔하게 내가 모르는 것을 대답하지 못했고 그래서 승복이 굉장히 쉬웠던 결과였기에 아쉽지 않았다. 다시 이 짓을 해야 한다는 게 신물이 났을 뿐. 불과 2주 전이지만 시간이 정말 많이 흐른 느낌이다. 그 모든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고, '기대감'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나를 죽이는 마음인지도 알게 되었고, 나도 이만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된 계기였다. 더 좋은 회사에서, 더 안정적인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은 매우 크지만, 나중엔 더 좋은 기회가 되겠지.


500명 중 3명이면 꽤나 잘했잖아 나? 이번만큼은 칭찬해 주고 또 내가 해야 할 것들을 해나가야지. 아, 그냥 이런 배움들이 또 정말 값지고 소중하다. 이렇게 또 성장하고 더 단단한 어른이 되는 거지 뭐! 잘했다 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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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뇽 이젠 놓아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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