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지를 지키는 일상의 알_H의 질문
사람에게는 몇 켤레의 신발이 필요할까?
여유로운 신발장을 가져보고 싶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니어도 신발장 밖으로 쏟아져 나온 신발들을 볼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한다. 맥시멈리스트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사실 옷장도 책장도 신발장도 가득 차서 빈 공간이 보이지 않는다.
"미니멀라이프"
유행처럼 정리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물건 가득 찬 집을 변신시켜 주는 프로그램이 방송사마다 하나씩 시작했다. 걸리적거리는 물건이 하나도 없는 단정한 방과 식구 수만큼의 그릇과 수저. 그리고 운동화 한 켤레, 구두 한 켤레, 슬리퍼 하나. 색상도 흰색, 검은색, 회색 같은 무채색.
온갖 색상으로 가득 차 내 방을 돌아보니 눈이 아팠다.
나도 미니멀리스트가 되고 싶다. 물론 나는 실패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되기위해 미니멀리스트들의 책을 너무 많이 살 때부터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중국에서 회사를 다녔던 스물다섯. 우리는 여직원 셋이 한 집을 썼었다. 꽤나 넓은 집이었지만 신발을 신고 집 안으로 들어가는 중국문화 탓에 신발장은 턱없이 작았다. 셋이 아니라 한 사람의 신발도 다 넣지 못했을 거다.
총체적 난국
우리가 생각한 방법은 구역을 나누어서 현관에서 부엌을 지나 거실로 가는 벽에 각자의 신발을 늘어놓는 것이었다. 문을 들어오자마자 벽에 기대어 죽 늘어서 있던 신발의 행렬은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기괴한 느낌이다.
우리 신발이 그렇게 많았던 것을 우리가 패션회사를 다녔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정통한 패션리더들이 패션의 완성은 슈즈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모든 옷에는 꼭 맞는 신발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 지금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특히 바지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운동화를 벗어버리고 싶다.)
주말 쇼핑을 주거 공동체의 신성한 규칙처럼 여겼던 우리는 언제나 서로에게 어울리는 신발을 권해주고 적극적으로 구매하도록 응원했다. 뒷굽이 닳거나 구두 가죽이 까진 신발을 고치기 위해 동네를 돌며 한국처럼(?) 수선해 주는 구두방을 찾아 쇼핑백 가득 구두를 들고나가 고치는 주말을 즐겁게 생각했다.
가지고 있는 신발들은 모두 하나하나 특별하고 소중했고 언제나 새로운 구두를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너는 발이 몇 개니?"
엄마는 신발장을 점령하고 있는 내 신발들을 보며 나에게 신발을 정리할 것을 명령했다.
"오늘까지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그냥 다 버릴 거야."
위험에 처한 신발을 구출하는 방법은 당장 집을 구해 신발과 함께 집을 나가거나 엄마를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수만 남기고 신발을 버리는 것이 최선이었다.
벌어들이는 돈을 책과 신발, 옷과 술에 투자했던 30대의 나는 가슴이 찢어지지만 신발을 버리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언제 신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신발이 많았다. 이런 걸 샀었나?라는 신발도 많았다.
30분 이상 걸으면 발이 잘리는 것 같은 고통을 주는 신발, 아무리 오래 신어도 신을 때마다 발뒤꿈치가 까지는 신발. 하루를 신으면 네 번째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는 신발. 사랑하지만 상처를 주었던 관계들처럼.
커다란 종량제 봉투를 가지고 와 한 켤레 한 켤레 신발을 집어넣으며 어떤 때는 시원하고 어떤 때는 아쉬워했다.
결혼과 동시에 안정적으로 신발을 보관할 수 있을 것 같던 내(?) 신발장은 운동화를 좋아하는 남편과 신지는 못해도 신을지도 모를 신발을 아직 싸들고 있는 나의 신발들로 가득하다. 거기다 몰래 버린 물건을 쓰레기통에서 찾아들고 돌아오는 아들의 철 지난 신발들이 틈틈이 꽂혀있다.
40대 이제는 신발의 아름다움 보다는 편안함을 쫓아다니는 나이가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날씬하고 예쁜 신발을 보면 사고 싶은 마음을 느낀다.
두 개의 발에 몇 켤레의 신발이 필요할까?
여전히 더 크고 넓은 신발장을 갖고 싶다. 가능하다면 신발을 살 수 있는 금전적 여유도 함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