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구 집에선가 TV 프로그램에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가 한 말이었다. 가게를 물려받지 왜 회사를 다니냐는 것이었다. 요리를 이야기하는 사람 백종원의 말이었다. 잘 될걸 알면서 왜 하지 않는가. 안 될걸 알면서도 왜 계속하는 건가. 장사 잘 되는 집을 놔두고 남의 집 가서 월급 받으며 일할 필요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각자의 꿈이 있다. 그 꿈들은 바다와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난다. 그렇기에 직업이 가지는 의미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일지 모른다.
나는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말했던 이유는 아마도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도 사람들이 요구하는 바는 있었다.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금전을 생산해 내지 못하면 직업으로서의 의미가 없어진다. 스포츠 스타도 영화배우도 어쩌면 모든 일이 직업적인 것일지 모른다. 그런데 왜 그들은 팬들에게 사인해 주고 같이 사진 찍어주고 그런 부가적인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 걸까. 한때는 모두가 꿈꿨던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오는 것이 꿈이었다.
소설가가 되고 내가 얻은 것들은 많지만 그만큼 심리적인 압박감도 크다. 지금은 세 번째 소설을 쓰는 데에 시간을 들이고 동시에 다른 몇 가지의 이야기도 구상해 보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문득 김해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수로왕릉을 자주 찾다 조금 더 구석진 곳에 수로왕비릉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을 찾았을 때 난 감동했다. 첫 번째 소설을 쓸 때였다. 왕비릉 안에 소나무 숲이 있는데 그곳에서 수십 마리의 백로를 보았던 것이다. 마치 영화 속 한 장면 같았다. 나무들 사이로 햇빛이 내리쬐고 그 사이로 하얀 날갯짓을 보았던 것이다. 인근 주민들은 그들이 떨어뜨리는 배설물 때문에 골치라고 한다.
동상동에 맛집도 한 군데 알고 있다. 김해 최초의 중국집이라는 경화춘이라는 곳이다. 한때 블로그에 마파두부 사진을 올리며 후기도 남겼고 그 글이 조회수가 높았다. 무엇보다 그 음식은 정말 돈 되는 맛이었다. 감각적으로 나를 일으켜 세우는 한 그릇이었다. 다시 걷는다. 그땐 어떻게 그렇게 오래 돌아다녔는지 모르겠다.
김해에서 부산으로 오는 버스 안에 있어서 꽤 큰 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난 몰랐다. 심지어 잠까지 자고 있었다. 구포대교를 건널 즈음이었다.
수로왕릉 주변의 구시가지에는 외국인들도 많이 산다. 파리에서 자주 볼 수 있던 모로코 사람들을 그곳에서 몇몇 마주쳤는데, 난 그들이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이동해왔는지 모르겠다.
동상동, 회현동은 경전철을 사이에 두고 내외동이라는 신시가지와 떨어져 있는데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곳에서는 작가가 된 듯했고, 내외동으로 오면 이력서를 넣고 연락을 기다려야만 할 것 같았다.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지금의 기분 때문에 나는 내가 살던 곳을 떠나야만 하는가. 다시 돌아올 것을 왜 떠나는가. 돌아오지도 않을 거면서 왜 떠나려고 하는가.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러고 살든 저러고 살든 말이다. 그냥 왔다 갔다 하는 것뿐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