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던...

by 문윤범


유럽의 한 도시에 머물다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곳은 마치 새로운 세상 같았다. 내겐 무엇이 정상적이었던 걸까. 하지만 한국 도시의 어지러움은 신비로움 같기도 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콜하스는 뉴욕을 delirious라는 형용사로 표현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그것을 정신착란으로 번역했다. 내가 사는 도시가 뉴욕과 다른 점은 아마도 산을 끼고 있었다는 것이었을지 모르겠다.

무엇 때문인지 파리에 있을 때 구글 스트리트 뷰를 통해 부산의 오르막길들을 걷곤 했다. 지금은 산복도로로 잘 알려진 곳이다. 생각해 보니 부산은 그랬다. 그때야 그런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기울어지고 휘어진 좁은 길들. 파리에서 아름다운 곳이라면 꼽을 곳이 정말 많겠지만 본능적으로 자주 찾던 곳은 벨빌이나 몽마르뜨였다. 파리 사람들은 보통 그 지역을 Belleville, Montmartre로 부른다. 몽마르뜨는 한국에서 정식 명칭 몽마르트르라 불리고 18구에 속한다. 벨빌은 벨빌로 불리는 것 같고 20구에 속하는 동네다. 어떠한 글자로도 이 지역들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다. 그곳을 느끼지 못하면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특히 벨빌은 분위기도 조금 비슷했다. 몽마르뜨처럼 동화 속 세계 같지도 않았고, 부산의 산 아래 동네는 그저 사람들이 살기 꺼려 하는 지역 중에 하나로 손꼽힐 뿐이었다. 전쟁은 그들이 살 곳을 찾게 한 것뿐이었다. 지금처럼 이곳저곳을 살피고 분석하여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을 테다.

아미동의 어느 절로 들어섰다. 아무렇게나 세워진 듯했던 작은 건축물들 사이를 헤매다 불교의 흔적들을 마주했다. 그곳에는 미술이 있었고 또 다른 건축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정신이 있었던 걸까. 따라온 사람은 없었다. 골목길 끝에서 나를 쫓으며 미행하는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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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난 도대체 무엇을 피해 도망 온 것이었을까. 오르막길 끝 어딘가에서 아래로 펼쳐진 풍경을 내려다보다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지금 파리에 왜 와 있는가.

그때 난 왜 유럽으로 떠난 것이었을까. 매일을 미스터리에 둘러싸이고자 했던 그때의 내 연기를 잊을 수 없다. 나는 훌륭했다. 그곳에는 절이 아닌 성당이 있었고 아무 의미 없이 십자가를 바라보며 있기도 했다. 그것을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으로 나뉘어 이야기하는 것도 멋스럽겠지만 나는 차라리 미술이나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에펠탑이라는 구조물이 도시의 상징처럼 세워져 있던 것도 기가 막힌 우연이었다.

나는 내가 살던 곳을 비정상적인 세계라 생각했다. 유럽의 그 도시는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다. 새로운 나를 세우는 기분이었다. 무너지고 쓸모없었던 것이 파리에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리고 지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무엇도 원래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직감했을 때 미술을 하고 건축을 해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히고 만다. 부산을 미술하고 건축하는 일은 원래의 것을 최대한 지키고 보존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주장하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영화감독이 되고 싶었는데 현실적으로 좀 어려울 것 같아 소설가라는 대안을 택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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