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외국인 여자와 결혼하고 싶다. 상상이란 때론 디테일한 장면들까지 모두 담아내지 않는가. 아파트 엘레베이터에서 만난 이웃집 아주머니가 애인인가 봐?라고 묻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해 가족들 앞에서 그녀를 소개하는 것까지. 둘러 모여 앉은 사람들과 그 사이의 우리 둘. 우리는 늘 주인공이었다.
외국인 여자를 만나기 위해 프랑스로 간 것은 아니었지만 기대가 아예 없었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는 그곳에서 누구라도 사귈 줄 알았다. 그러나 현실은 결국 같은 현실이었다. 지금 당장 내 눈앞에 다른 눈이 있을 때 말 한마디 꺼내는 것조차 두려운 것은 변치 않았다. 몇몇의 여자들을 만났지만 그저 나와 다른 사람들일 뿐이었다. 나는 그 벽 앞에서 좌절하고는 했다. 그 사람이 나와 같지 않다는 현실을 극복하지 못했다. 자존심은 나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치 스스로를 가두는 듯했다. 그곳에서도 난 상상했다. 다시 그릴 뿐이었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하고 아이까지 낳는 일. 그건 진짜 꿈 같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느 중국인 여자와의 그날 밤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난 그녀가 꽤 마음에 들었고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듯했지만 클럽에 가서 춤을 추는데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았다. 난 그녀가 그런 춤을 출 줄 몰랐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부끄러웠던 것은 아니다. 모르겠다. 난 단지 그런 형태의 춤사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뿐이다.
그럼에도 상상은 끝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장면들이 멈추는 지점은 늘 명절이었다. 그 장면에서는 언제나 컷!을 외치곤 했다. 음식을 만들고 상 위에 올려놓고는, 그러나 먼저 남자들이 앉아 먹는 장면에서 나는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나. 설명을 해줘야 하나. 그녀는 이해심이 넓은 여자라 그저 스스로 받아들이려 할까. 그녀가 프랑스인이든 중국인이었든 말이다. 한국여자라고 다를 건 없을 듯하다. 정통 유교 예절을 채택한 이 가문에 한 명의 아내로 들어와 그녀는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될까.
그러나 우리 가족은 따뜻하다. 그렇게 믿고 싶다. 먼저 밥을 먹어도, 그들이 중심이 되어 술을 마시고 정치 이야기를 해도 그녀들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수고하셨다 말하는 남자도 있고, 또는 마음 한구석에서 죄책감 같은 것을 가질 남자도 있을 것이라는 점을.
파리에 있을 때 프라하에 잠깐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는데 여행 후 체코 여자와 결혼하는 상상도 해봤다.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을 만나는 장면을 떠올렸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될까. 그리고 그들의 문화를 따르게 될까. 사람들은 어떤 지점에서 서로 만나고 마주치게 되는 운명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