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숲이 있고 나무들이 있을까. 제주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은 한라산이었다. 내게 백록담을 보는 일은 등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구멍으로 빠지는 일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리막길보다 오르막길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몸은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늘 늪에 빠지고 싶은 마음이나 이 몸 덩이는 아니라고 말했다. 살고 싶다 이야기한다.
흰 사슴이 물을 마셨다는 전설만큼 나를 이끄는 것은 없지만 그저 거울을 보며 옷차림이나 외모에 신경 쓰는 20대였을 뿐이다. 함덕과 협제, 내게는 김녕해수욕장이 끝내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는데 그래도 제주도에 바다가 없었다면 그곳에 가지 않았을 것이다. 아름다운 포장지로 싸인 선물과도 같은 섬이었다. 그걸 뜯어낼 때는 왜인지 설레고 흥분된다. 한라산을 둘러싼 숲들이야말로 제주도의 진짜 멋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럼에도 결국 한라산 등반을 포기한 이유는 아침 일찍 일어나 준비하고 오르고 다시 내려오는 일을 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상자 속에 든 건 하얀 사슴 인형이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두려 한다.
요즘은 들개 때문에 비가 오지 않음에도 우산을 들고 다니는 도민들이 있다고 한다. 슬픈 이야기다. 밤부터 내리던 비가 멈췄는데도 나는 왜 우울한가. 제주도로 가지 못하는 이 신세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라산 기슭에서 들개를 만나면 어떻게 행동할까. 쭈쭈쭈쭈... 그러다가는 얻어 물리겠지?
먼저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고 작은 실랑이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도시는 어디든 마찬가지이지 않은가. 길을 가다 어깨를 부딪혀 시비가 붙을 수도 있고 자동차 경적 소리에 운전자를 노려보는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 여행와서까지 싸우고 다투고 싶지 않았는데 운전자는 지금의 이 현실이 못마땅하다. 그땐 그런 것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신경조차 쓰지 못했다. 기숙사에 사는 것이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모텔 달방을 알아보러 다니는 현실은 너무도 비참하고 두려운 것이었다. 결국 난 그곳에 적응해 살기로 마음 먹는데...
친구들이 생기고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할 사람들이 생겼다. 시청 근처의 술집에서 처음 제주도의 술상을 받아본 것이 기억난다. 밖으로 나와 다른 무리의 아이들과 시비도 붙었다. 서로 주먹질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더욱 끈끈해졌던 것인가. 살기 위해 발버둥 친 것이었는지 모른다. 여자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주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는 길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곳으로 다시 여행을 떠나는 일은 언제나 꿈꾸는 일이다. 하루 이틀 있다 가기에는 너무도 허무한 곳이라는 것을 안다. 횟집을 찾아다니고 오겹살집도 가고 다시 편의점에서 물 받아 컵라면 먹는 일도 해보고 싶다. 짜장면을 시켜 먹을 때는 이제 탕수육도 시킬 것이다. 여행은 현실을 떠나는 것이지만 다시 현실에 부딪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것, 여행일지 모른다. 제주도라는 섬은 꿈과 같은 곳이지만 결코 꿈이 아니었다. 어디선가 들개를 마주치면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서 있을까.